겨울 어느 날

by 소금별


겨울 어느 날


버스 평가를 하러 집을 나섰다.

따뜻한 집에서 뭉그적 거리다가 더 이상의 게으름은 안될 것 같아서,

올해 마지막 남은 평가를 하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하천변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오늘은 다른 생각에 젖어있어서인지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발은 걷고 있지만 마음은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일기예보에서는 춥다고 했는데 날씨는 생각보다 포근했고,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이제 제법 모습을 갖춰가는 신도시, 우리 집은 그 신도시 경계에 있었다.

신도시로 가는 길은 버스를 타기도, 걷기도 애매한 거리라 매번 걸었다.

자꾸 걷다 보니 3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가 무색하게 이젠 걷는 것이 더 편해졌다.


아파트들이 빼곡하게 다 들어선 줄 알았는데 성냥갑 같은 아파트들이 지어지고 있다.

영문으로 된 이름이 어느 아파트인지 분간할 수 없게 했다.

시어머니가 찾아가지 못하게 아파트 이름을 영어로 짓는다는 우스갯 말이 떠올랐다.


도심을 휘적휘적 걷고 있지만 특별한 목적지가 없으니 최대한 걸을 수 있는 만큼 걸었다.

오늘의 목적은 똑타버스를 타는 일이니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공사 중인 아파트 단지를 지나니 큰 빌딩들이 나타났다.

그 너머에 대단지 아파트들이 방어벽을 치듯 쭉 늘어서있었다.


“이쯤에서 하자.”

똑타앱을 열고 예약을 하니 40분 후 도착이라고 했다.

내가 잘못 봤나 싶어서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봤지만 사실이었다.

똑타정류소를 찾으려고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봤지만 여기가 어딘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발은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정처 없이 향하고, 눈은 지도를 분해하듯이 쳐다보았다.

“보면 뭐 하나 길치인 걸.”

6분이 걸린다는 거리는 10분이 지나도록 좁혀지지 않았다.

시간에 쫓겼다면 마음이 불안했을 테지만 나에겐 40분이라는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다.


전혀 허둥댈 필요가 없었다. 지도를 보면서 천천히 걸었다.

우여곡절 끝에 똑타정류장을 찾았다.

찾았다는 사실을 만끽하며 근처 산책로를 걸으며 겨울 오후의 여유를 누렸다.

30분이 20분으로, 20분이 10분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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