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쉼표, 쇼팽에게 보내는 편지

by 소금별


2월의 쉼표, 쇼팽에게 보내는 편지



간밤에 눈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눈이 새하얗게 쌓여있었다.

온 세상이 잠든 밤, 어둠 속에서 송골송골 내렸을 눈을 떠올리니 아쉬움이 남았다.


주말이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 한 주, 방학이라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없어진 지 오래였다.

남편은 아침을 먹고 미끄러울 출근길을 걱정하며 집을 나섰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아이들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배웅을 했다.


작은 아이는 학원으로, 큰 아이는 독서실로 나서고 나만 혼자 집에 남았다.

대충 집안일을 마치고 식탁에 앉아 읽던 책을 펼쳤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에서

오늘도 이시봉은 그지없이 명랑하고, 젊은 나이에 술독에 빠져 사는 시습은 날 슬프게 했다.


읽던 책을 덮고 밖으로 나가니 눈바람이 불었다.

산책을 나가볼까 했던 마음이 찬 바람에 거짓말처럼 숨어버렸다.

내 마음은 오늘도 이리저리 널뛰기를 했다.

쉬고 싶은 마음과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엎치락뒤치락했다.


머플러를 두르고 장갑을 끼고 산책길에 나섰다.

펼쳐져 있는 논 한쪽으로 커다란 마시멜로 두 개가 눈사람처럼 서있었다.

그 사이로 떨어져 나온 비닐 조각이 머플러처럼 휘날렸다.

어린 왕자의 목도리가 문득 떠올랐다.


논 한쪽에는 어디서 퍼다 날랐는지 커다란 흙더미가 있었다.

“아, 내일이 입춘이구나.”

농사꾼은 절기마다 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했다.

짚과 계분과 흙을 섞어 논에 펼쳐놓으면 거름이 되겠구나!

얄팍한 내 생각이 어느새 그리로 향하고 있었다.


간밤에 내린 눈이 제법 되었는지 그늘이 진 곳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누군가 꾹꾹 눌러 밟고 간 발자국 옆으로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눈이 보였다.

하릴없이 그 눈을 밟았다.

뽀드득 소리를 내며 눈을 밟는 느낌이 좋았다.

지난겨울, 제주의 어느 숲에서 눈을 밟았던 기억이 스쳐갔다.


정오를 지나자 햇볕은 더 따사로워지고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눈이 녹기 시작했다.

눈이 녹은 작은 물웅덩이가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스마트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오늘 같은 날에는 안나 게르만의 <쇼팽에게 보내는 편지>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샹송인 듯 읊조리는 그녀의 음악은 때로는 애달프기도 했고 간절하기도 했다.

1월이 지나고 찾아온 2월이 쉼표 같다는 DJ의 멘트가 흐른다.

좀 쉬어가도 괜찮다는 그 말에 나를 채근했던 지난 시간들이 겹쳤다.

어느새 나는 <쇼팽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편지 한 통을 띄워 보냈다.

2월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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