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도 못하고 집을 나섰다.
“일어나야지.”
아침에 녹음재생기처럼 같은 말을 되뇌이며 아이들을 깨웠다.
버스를 놓칠세라 서둘러 준비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오늘은 미래대학 민화수업 개강일이었다.
자동추첨이라 떨어지면 어쩌나 전전긍긍했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당첨이었다.
문자메시지로 온 ‘당첨'이란 단어를 몇 번이나 들여다봤는지 모른다.
민화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 전이었다.
우연히 도서관 현수막을 보게 되었고 그것은 민화의 첫걸음이 되었다.
그렇게 완성한 첫 작품은 바위와 석류와 새가 어우러진 화조도였다.
그때부터 곳곳에 숨어있던 민화가 자주 보였다.
사극 속 오봉도, 모란도, 화조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파도처럼 엄습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평생학습센터 현수막을 보았다.
그렇게 민화와의 인연은 조금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호랑이와 까치가 있는 호작도를 그릴 때의 설렘,
모란도를 바림 할 때 화선지에 사르르 스며들던 물감의 번짐을 잊지 못한다.
“소질이 있네요.”
주변에서 칭찬이 들렸고 정말 소질이 있나 으쓱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비대면으로 이어지던 코로나 시기가 지나고 다시 민화를 배운 지 5년이 흘렀다.
“민화 공모전에 도전해 볼까?”
욕심을 키우기도 했지만 내 실력은 어느 순간 마법을 건 것처럼 멈춰버렸다.
잘하는 것을 꾸준히 하면 그게 재능이 된다고 했던가.
겸재 정선은 60대 이후에야 자신의 산수화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러니 나는 아직 늦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화 재료가 든 가방을 메고, 화선지가 든 화통을 들고 앞으로 발길을 내딛는다.
저만치 나를 싣고 갈 버스가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