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아기가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앞만 응시하던 나에게 시계추처럼 까닥이는 폭신한 발이 보였다.
시선을 위쪽으로 향하다가 뽀얀 피부를 한 아기의 눈과 마주쳤다.
저 자그마한 눈에 내가 보일까.
아기를 향해 어르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차마 ‘까꿍'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엄마 오리만 졸졸 따라다니는 새끼 오리처럼 아기는 엄마의 가슴에 폭 안겨있었다.
입에 공갈젖꼭지를 물고 그네를 타듯 다리를 앞뒤로 흔드는 아기를 보니
내 아이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나를 향해 해바라기보다 더 환하게 웃어주고,
세상이 엄마인 듯 나만 졸졸 따라다녔던 아이들.
그것이 때로는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그 아이들이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다.
놀러 갈까 물으면 쉬고 싶어라고 돌아오는 공허한 메아리.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좋은 시기지.
이해는 되었지만 탕약처럼 쓴맛이 느껴졌다.
“저는 매일 밖에서 산책해요.”
커뮤니티 카페에서 고등학생 아이를 둔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래요.” 나는 동조하듯 댓글을 달았다.
그날도 운동화를 조여신고 무작정 밖으로 나와 하염없이 걸었다.
“일어나서 밥 먹어야지.”
오늘도 일어나지 않는 아이와 대치를 하다가 나왔다.
호환마마 보다 무섭다는 사춘기는 아직 아이의 내면에 있을까.
열리지 않는 아이의 마음 앞에서 나는 한없이 외로웠다.
상념에 잠겨있다가 다시 앞을 보니
아기는 엄마 품에 얌전히 안겨서 다리를 까닥이고 있었다.
사랑도 저렇게, 모양만 바꾸어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