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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별 Oct 23. 2024

꿈 많은 소녀에게


안녕! 내가 너에게 이렇게 인사를 한다면 너는 “참 이상한 아줌마야”라고 하겠지? 너보다 나이는 훨씬 많지만 사실 알고 보면 마음은 또 그때의 너와 다르지 않은 아줌마인 내가 과거의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어.


너는 참 꿈이 많은 소녀였어. 겉으로는 새초롬해보였지만 마음은 왜 그렇게 시골소녀 같았을까? 겉으로 보이는 게 다는 아닌데 네 주변 사람들은 너를 너무 믿었나봐. 어느 누구 한 사람 공부하라는 소리를 한 적도 없고, 이래라 저래라 네 인생에 대해 터치한 사람도 없었지. 어떻게보면 부러울 정도로 좋겠다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소녀인 너는 이르게 어른이 되어야했지. 


어느 누구도 너의 삶에 대해 말을 해주지 않았지만 너는 묵묵히 네 자리를 지키는 아이이기도 했어. 공부도 곧잘 했고 말썽도 피우지 않았고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다는 사춘기도 너를 피해 갈 정도였으니 지금의 내가 너를 보면 그림자 같은 아이였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 


“니 밥 묵었나?”라는 사투리들 속에 “너 밥 먹었니?”라는 서울 말씨가 친구들을 사로잡을 줄 누가 알았겠니? 친구들은 네가 서울을 떠나온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서울에서 왔냐고 물었어. 그것은 일종의 부러움이기도 했고 너는 그 부러움에 어깨를 으쓱하며 훈장을 단 것처럼 뿌듯해하기도 했지. 그렇게 너는 수줍음 많고 또 인정받기를 좋아하는 소녀였다는 생각이 들어. 라디오를 즐겨 듣고 시를 쓰고 친구들은 그런 너를 문학소녀라고 불렀어. 그만큼 너는 꿈이 많은 그냥 그 또래의 평범한 소녀이기도 했어.


너는 작사가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한때는 작사가를 꿈꾸기도 했고 작사가가 안되면 시인이라도 될까 하기도 했지. 그러다가 어디선가 신사임당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신사임당같은 엄마가 아니, 여인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잖아. 어렸을 때 괴도 루팡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서는 이런 멋진 추리소설을 쓰면 좋겠다고 며칠동안 추리소설을 쓰기도 했지. 이건 비밀인데 말이야. 아줌마가 된 지금의 나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참 좋아해. 


그때의 너는 일기도 참 열심히 썼었는데 「안네의 일기 」를 읽고 너도 <하나>라는 일기장을 만들어서 안네처럼 너만의 비밀을 털어놓기도 했잖아. 그 일기장은 아직도 쓰고 있니? 지금에 와서야 말이지만 그렇게 일기를 꾸준하게 써서 작가는 되지 못했지만 한때는 작가가 되겠노라 호기롭게 말하던 젊은날이 너에게도 있었어.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른 어느 날에는 잊었던 꿈을 떠올리고는 뒤늦게 글을 써보겠다고 팔을 걷어붙힌 아줌마의 시절도 겪게 될거야.


「빨강머리 앤 」을 써놓고 잊고 살다가 다락방에서 발견한 캐나다의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를 동경하며 마치 앤의 인생이 네 삶인 것처럼 착각했던 날도 너에게 있었지. 빨강머리라고 놀렸던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려고 앤의 주변을 맴돌던 길버트를 보면서 너는 또 얼마나 마음이 부풀었니? 지나고 보니 그때가 그래도 네 인생에서 파릇파릇 새싹이 돋듯 반짝이던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묵묵히 제 할 일을 할 줄 아는 학생입니다.”라고 통지표에 쓰인 글을 보고 많이 위로가 되었던 너를 나는 기억해. 큰 칭찬이 아니더라도 너는 아마 잘하고 있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을거야. 너는 충분히 잘 하고 있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그 시절을 잘 극복했으면 좋겠다. 너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살고 아줌마가 되어보니 인생 뭐 별거 있었나 싶어. 열심히만 산다고 인생이 잘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인생 굽이굽이 시련도 있고 고난도 있더라. 다만 내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너 혼자 무거운 짐을 다 지려고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힘들면 힘들다고 투정하고 잠깐 이탈도 해보고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주변을 살피면서 천천히 산책하듯 내 앞날을 살았으면 좋겠어. 그렇게 잘 살고 있으면 청춘의 어느 날에 또 너에게 안부 편지를 보낼게. 그때까지 건강하고 모란같은 네 사춘기를 아름답게 잘 보내기를 바라며 오늘은 이만 안녕할게.     


           -미래의 어느 날에 꿈많은 아줌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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