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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별 Oct 25. 2024

자기만의 방


내 방을 처음 갖게 된 것은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책장과 침대를 들이고 책상 위에는 오렌지색과 노란색으로 프린트된 체크무늬 천을 깔았다. 비 오는 날에는 프리지아 한 다발을 꽃병에 꽂고, 라디오 프로그램인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흘러나오는 애니래녹스의 노래를 들었다. 책상 위에 턱을 괴고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감성이 물씬 풍기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월급을 받으면 무조건 책 한 권을 샀다. 서점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내 소유의 책을 갖게 되는 것만으로도 나는 부자였다. 만족감에 어깨를 들썩거리며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었고, 감상에 젖어 글을 쓰곤 했었다. 그렇게 책장에는 오롯이 나를 위한 책들이 한 권씩 늘어갔고, 노천명의 산문집을 사고는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모른다. 노천명의 수필을 읽고, 피천득의 수필을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대학생이었다. 시를 끄적이고 수필을 쓰고 노천명의 수필집 <설야산책> 을 읽고 피천득의 수필집<인연>을 소리 내어 낭독하면서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책장 하나로 꽉 찬 방에서 꿈을 키웠다. 언젠가는 나도 시인이 되겠지, 언젠가 나도 멋지고 감동적인 수필을 쓸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둘국화』라고 제목을 달았던 시가 떠오른다.      


들국화    

 

어느 들판에 이름 모를 꽃으로 피어나

바람에 흔들리며 한세월 살다가

누군가의 손에 꺾이어

내 한 몸이 사라진다 하여도

     

어느 책상 한 귀퉁이,

작은 꽃병에 꽂혀 내 영혼이 위태하여도

나를 바라보는 이의 눈빛이 따스하다면

마지막 남은 향기를 사랑으로 내뿜으리라     


대충 이렇게 쓰인 시였는데 그 시절 썼던 시들은 결혼하고 친정이 이사를 거듭하는 사이 어디로 사라지고 말았다. 학교 문예 공모, 지역 문예 공모. 등에도 참여해서 작은 상을 받을 때였다. 어느 출판사에 보낸 원고가 아쉬움을 가득 안고 돌아왔지만 나는 괜찮았다. 처음 생긴 자기만의 방에서 늦은 밤 라디오를 들으며 문학의 꿈을 키우던 20대의 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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