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영<why not>에 대한 짧은 단상
하늘을 두둥실 떠다니는 풍선이 있다. 바람결을 따라가며 자유롭게 떠다니는 모습에 내 시선이 머문다. 풍선은 아무것도 붙잡을 필요가 없다는 듯 자유롭게 하늘로 떠오른다. 그 풍선을 바라보는 새가 있다. 새는 날개를 가지고 있지만,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이 새는 날지 못하는 새일지도 모른다. 땅에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새는 하늘로 가볍게 떠오르는 풍선을 바라본다. 작은 새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선처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꿈을 꾼다.
풍선 또한 새를 바라본다. 새의 두근거리는 심장이 자신에게 전해져 오는 것 같아서 두근거린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새는 가볍지 않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뚜렷이 인식하며 존재감을 뿜어낸다. 바람에 의지해 둥둥 떠다니는 자신과는 다른 견고하고 생동감 있는 생명력이다. 풍선은 이 새처럼 심장이 뛰고, 두 다리로 땅을 밟고 서 있을 수 있으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새의 심장, 새의 몸을 갖고 싶어 하는 풍선의 꿈. 하늘을 떠도는 그에게는 새가 가진 단단함이 매력적이다.
때로는 나와 다른 모습을 지닌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한없이 자유로워 보이는 풍선이 되길 원하거나, 때로는 심장이 뛰는 이 땅 위의 새가 되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내가 꿈꾸는 것이 진정 필요한지는 알 수 없다. 풍선은 바람이 멈추면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고, 새는 하늘을 나는 대신 날개를 접고 땅에 붙어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의 삶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비록 풍선의 가벼움과 날지 못하는 새가 된다고 해도 나만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일의 소중함을 생각해보는 아침이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꿈꾸며 나를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자리에서 내 심장으로 꿈을 꾸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