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무조건 ‘도전’하고 ‘포기’ 하지 말라고 그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열정과 성실함만이 나를 키우는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고등학교는 수시와 수능, 교과와 학생부 종합 정도의 노선만을 정한 뒤 열심히, 성실하게 노력하면 결과물이 노력에 비례해서 나타났다. 오직 대학교를 입학하기 위한 확실한 목표와 목적 이에 맞춰진 시스템 덕분이다. 이미 눈치챈 독자들이 있을 것 같다. 이번 글 주제는 ‘삶의 방향성에 대한 중요도’이다.
사회생활과 군생활을 하며 ‘포기’와 ‘도전’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크게 바뀌었다.
이전에는 ‘포기’와 함께 연상되는 단어가 ‘실패’, ‘나약함’ 등 부정적인 단어였다면 지금은 ‘효율’ ‘방향성’, ‘목적, 목표’ 등 부정적이지 않은 단어들로 바뀌었다.
뜬금없지만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 있는 벌레를 보며 다시금 느꼈다. 소변기를 탈출하기 위해 쉬지 않고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려 발을 구르고 있는 벌레가 딱 적절한 예시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끄러운 소변기 위를 죽어라 같은 방향과 방법으로 오르고 있는 벌레에게는 ‘포기’와 ‘재설정’이 필요해 보인다.
아니다 싶으면 ‘포기’도 ‘방법’이다.
‘도전’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도전은 나와 내 삶에 있어서 이로운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 속 ‘나’는 하나이다. 무작정 시작한 도전이 다른 의미 있는 도전을 시간적 제약과 몸에 피로 누적으로 방해하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군대에서 나는 sdt; 흔히 말하는 특수임무대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군 복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나는 당연히 거절했다. 사실 계속되는 제안에 나는 거절하고 또 거절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나를 인정해주고 함께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서 나도 함께하고 싶어 졌고 신청을 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부대 사정에 의해서 특임대로서의 군생활은 물 건너갔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특임대에 들어갔다면 그에 맞는 체력과 임무수행을 위한 공부에 열정과 시간을 쏟아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꿈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브런치 작가를 도전했고 나를 브랜딩 하는 일 등 나에게 더 잘 어울리고 하고 싶은 일을 구상하고 실천하며 시간을 사용했다. 만약 특임대에서 복무하였다면 지금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떠한 의미를 찾았을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 지금 생각하기로는 특임대에 가지 않은 것이 훨씬 나다운 삶과 시간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동기들은 내게 “도전해봐라.”, “나도 하고 싶다.”라고 말했고 조금의 부러움과 인정을 받을 수 있었지만 나에게는 나에게 맞는, 내가 하고 싶은 ‘도전’이 있기에 아쉬움이 전혀 없다. 남들이 말하고 원하는 도전이 아닌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도전을 하며 살아가자. 어떤 일을 도전하지 않았다고 자책할 이유 또한 전혀 없다. 나만의 도전을 하고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