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필연성
죽음의 필연성을 통해 인간은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만약 인간이 이 우주에서 본질을 이루는 존재라면 죽음으로 소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통해 인간은 우주의 하찮은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을 '만화경'에 비유한다. 인생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늘 같은 요소를 갖고 있다. 그 인생의 바탕에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마다 다양한 일을 겪지만, 종국에는 비슷하다. 따라서 '우리의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은 만화경 속의 그림과 같다. 돌릴 때마다 다른 그림이 보이는 것 같지만, 눈앞에 있는 그림은 사실 언제나 변함없다'는 것이다.
죽음. 끝. 나는 항상 이 죽음으로 한 존재의 삶이 끝이 난다는 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불교를 믿는 입장으로써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시간, 어떤 세계에서 다시 윤회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지만, 한 세계에서의 삶이 끝난다는 게 안타까웠다. 우주의 모든 세계는 다 똑같지 않을 것이다. 멀티버스니 토끼굴이니 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 것처럼. 우주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뿐 아니라 더 다양하고 많은 세계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존재라는 것은 한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데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의 시간은 퍽 짧다.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백여 년 남짓이니 말이다. 이 백 년의 시간 동안 인간이 깨닫고 해낸 것들이 많을 것인데, 그것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
삶에서 이룬 것이 많은 인간일수록 더 억울함이 쌓이는 것 같다. 이렇게 욕망과 욕심이 많은 존재는 인간이 제일일 것이다. 지키고자 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바라는 것도 많고 욕심도 많고 질척거리며 물고 늘어지는 습성을 지니게 된 것인가?
왜 우주는 한 존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 인가. 그냥 억 겹의 세월을 지나면서 깨달은 것을 저장하고 저장하여 모두 돌려줄 순 없을까?
내가 사는 이 세계는 감옥인 것인가.? 무엇을 위해 태어난 거고 무엇을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이고 왜 살아가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다. 해답을 보고 공부하는 것처럼 나도 이유를 알고 이 삶에 임했으면 좋겠다.
부자던 가난한이건 큰 개념으로 보면 삶은 다 똑같다.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고.
태어남과 죽음은 같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그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겠지. 이것이 하나의 테스트인 것인가?
그럼 나는 이 테스트를 어떤 행동과 생각으로 임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