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세째날 상그릴라 탄중아루 리조트
이곳은 한국인가 말레이시아인가.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온통 한국 사람이다.
"여기 아이스크림 파는 곳 어디있나요?"
"네 저 뒤로 가보세요"
70대 노부부가 선베드에 누워 있는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한국말로 물어보셨다.
그러고선
"아이쿠, 내가 한국말을 했네..."
하신다.
영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한국말이 튀어나온다. 말레이시아 직원도 한국말을 하면 알아 들을 것 같을 정도로 위화감이 없었다.
상그릴라 리조트는 말그대로 한국인들의 휴양지였다.
1박에 30만원쯤 하는 리조트는 저가 항공권 비행기값을 감안하고도 제주도 여행보다 싸게 먹힐 듯했다.
조식뷔페에는 김치와 불고기와 깍두기가 놓여 있었다.
오후에는 투어 차를 타고 2시간 30분을 달려 반딧불이 장소로 갔다. 거기도 온통 한국인이었다.
말도 못 하게 냄새나는 구명조끼를 대충 걸치고 원숭이에게 바나나도 주고 크리스마스 조명같은 반딧불이도 봤다.
일몰에 맞춰 인생 사진 찍는다고 가이드의 요구에 맞춰 민망한 포즈를 있는대로 연출했다.
젊은 애들은 미리 알고 왔는지 화려한 옷을 입고 오만 요상하고 이쁜 포즈로 인생샷을 건지고 있었다.
돌아오니 저녁 9시가 넘고 있었다.
우리 인생샷을 찍어 준다고 바닷가에 드러 눕다시피한 가이드의 노고에 주머니에 있는 한국돈을 다 털어서 엄지척을 해주었다.
존은 시커먼 이를 드러내며 수줍게 웃었다.
세째날은 종일 리조트에서 먹고 자고 먹고 마시고 뒹굴었다.
친구가 아가씨 때 입었다던 호피무늬 비키니를 가지고 와서 내게 입혔다. 그녀의 노력이 가상해서 호피무늬 비키니를 입고 발레 한답시고 춤을 추며 돌아다녔더니 옆 방의 이슬람 할아버지가 베란다로 나와서 미친년 보듯 멍하게 보셨고, 수줍음 많은 다른 친구는 그 비키니 입고 돌아 다니면 자기는 같이 수영 안하겠다고 질색팔색을 해서 어쩔 수 없이 레시가드로 꽁꽁 싸매고 원없이 수영을 했다.
우연히 수영장에서 60대 캐나다 아저씨를 만나 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친구가 캐나다 남자분이랑 수영장 끝에서 한참을 얘기하는 나를 보고 현지인같다고 추켜세웠다.
내가 그와 한 얘기라고는 몇살이냐 이름이 뭐냐 어디에서 왔냐 뭐하냐 ...... 초등학생도 구사할 수 있는 영어들이었다. 그마저 그는 내 발음을 못 알아 들어 한참을 귀기울어들었다는 걸 알라나...
밤에는 바에서 라이브 노래를 들으며 맥주 한 잔을 했다.
신청곡도 받아준다고 해서 한국노래를 신청했더니 노사연의 '만남'을 한국 가수처럼 정확한 발음으로 불러서 깜짝 놀랐다. 일어서서 박수를 쳐주니
"아이 러브 한국"
이라고 인사를 해 주셨다.
까톡 까톡
애들에게선 연일 톡이 날아오고 있었다.
막내는 언제 오냐고 삼각김밥으로 매끼니를 떼우고 있다고 사진까지 첨부해 나를 죄책감에 빠지게 만드려고 했고, 큰애는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고 징징거렸다.
남편은 현장에서 열심히 노가다를 하고 있는 사진을 올려 보냈다.
휴대폰을 꺼 버렸다.
아름다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