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말레이시아인가
백신 미접종으로 미국 여행이 불발 되고 나자 몸이 근질 거렸다.
때맞춰 만기가 된 적금이 두둑했고 불안하지만 자유로운 프리랜서의 삶은 넉넉한 시간을 내 주었다.
무엇보다도 미국에 간다고 온갖 사람들에게 자랑질을 해뒀는데 무안하게 되어버렸다.
칼을 뽑았으니 뭐라도 썰어야했다.
일단 백신 패스가 되는 곳을 검색했다.
그리고 고소공포증에 폐쇠공포증이 있는 내가 버틸 수 있는 5시간 내의 비행시간인지 확인했다. 8개월간 미나우 선생님께 배운 영어를 시험해 볼 공간이자, 저렴한 물가에 치안이 좋은 곳이어야 했다.
말레이시아는 조건을 완전히 충족했다.
됐다. 항공권을 예매하면 시작이다.
그런데 혼자 가자니 7년만의 배낭여행이 조금 두렵기도 했고, 심심하기도 해서 같이 갈 사람들을 모았다.
몇몇은 이런 저런 핑계로 난색을 표했고, 좋아라 가자고 하던 사람들도 남편의 반대에 꼬리를 내렸다.(반백의 나이에 남편의 허락을 받는다는 게 이상하기도 했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일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넘겼다)
그래... 안되면 혼자라도 가지 뭐 .....
포기하던 차에 생각지도 못한 친구들이 손을 들어 줬다.
다들 배낭여행은 처음인 사람들이라 내가 총대를 메고 매주 만나 준비과정을 거쳤다.
말레이시아 배낭 여행에 관한 책을 사서 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공부를 했다.
잘 터지는 유심이 뭔지도 알아보고 최저가 항공권, 각 도시의 숙소, 그랩까는 법, 구글맵 활용하는 법, 파파고 돌리기, 필수 영어 문장 50개 외우기, 여정짜기
3개월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12월에 항공권을 예매하고 2월 8일 드디어 말레이시아로 출발했다.
지극히 사적인 말레이시아 배낭 여행 감상기
이제부터 쓰는 여행기는 너무나 주관적이고 사적인 감상이라 반드시 따라 할 필요도 없고 맹신 할 필요도 없다. (여행 가기 전에 블로그 참조도 많이 했는데 맞는 것도 있고, 전혀 아닌 것도 있었다)
사람의 입맛은 그 인구 수만큼이나 천차만별이고 같은 곳을 가더라도 그때의 상황과 내 처지에 따라 얼마든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게으른 성격에 친절하게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다정함도 없을 것이고, 발로 찍어도 나보다 잘 찍겠다는 우리 아이들의 볼멘소리를 보건데 눈요깃거리도 별로 없을 것이니, 민망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읽어주시는 분들의 수고로움과 시간을 좀 먹어서는 염치가 없으니 10일간 말레이시아를 다녀 온 주관적 내 감상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여정>
2월 8일 부산 김해공항 출발 -> 코타키나 발루 3일 -> 말라카 2일 -> 쿠알라룸푸르 2일-> 나머지는 저가 항공의 대가로 이틀 정도 공항에서 허비함(베트남 가서 자가 환승으로 비행기 갈아 탐) -> 2월 17일 부산 김해 공항으로 돌아옴
자유여행은 반드시 목적을 가지고 가야 한다. 휴양이 되든, 맛집을 탐방하는 것이든, 사람들과의 교류든
무언가 확실한 목표가 있어야 여행 노선도 짜기 쉽고 의미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나는 태어나 한 번도 반딧불이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꼭 한 번은 반딧불이 투어를 하고 싶었다. 그 유명하다는 선셋도 보고 싶었다. 그러자면 코타키나발루를 일정에 넣어야했다.
외국 사람들과 영어로 얼마나 대화가 되는지도 궁금했다. 최대한 걸어다니며 영어를 활용하기로 했다.(이것도 왜 편한 방법 놔두고 걸어다녀야하느냐는 동료들의 강력한 항의에 내내 그랩를 타고 다녀서 그랩 기사랑 주구장창 얘기해야했다.)
일본에서 실패한 구글맵을 활용해 길을 찾아 보고도 싶었다.( 해봤는데 역시 실패였다. 극심한 방향치는 나침반을 보고도 어느 방향인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사람들이 재산이었다. 모르면 무조건 물었다.)
처음부터(항공권 예매부터) 끝까지 (숙소,유심, 원하는 곳 가기, 그랩 활용하기, 자가 환승하기) 오로지 우리 힘으로 해 보고 싶었다. (더러는 실패했지만 대부분은 성공했다. 내년부터는 혼자 동남아를 다녀도 할 수 있을것 같다)
말라카는 고풍스러운 옛모습을 볼 수 있다는 책의 내용을 보고 쿠알라룸푸르 가는 길에 들를 예정이었다.
쿠알라룸푸르는 같이 가는 지인이 쇼핑 천국이라 꼭 들러야 한다고 해서 일정에 끼워 넣었다. (동행이 있다는 건 이런면에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쇼핑몰에 가기 싫어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내가 동료들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일정에 넣었다. 다음에 간다면 글쎄.... 굳이 쿠알라룸푸르는 가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3개 도시로 노선을 짜고 그 도시에서 볼 만하다는 곳을 구체적으로 적어 나갔다.
먼저 큰 틀을 잡고 그 다음에 숙소와 교통편 근처 맛집을 구글맵으로 거리를 확인하며 일정에 넣어 두었다.
<견문>
코타키나 발루에서 보고 들은 것
숙소 첫째 날 <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호텔>
자정에 도착해서 하루를 날리는 시간이라 첫 날은 싼 곳에 머물기로 했다. 홀리데이는 가격도 싸고 대체로 깨끗했다. 조식도 먹을 만 했고 직원들도 친절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식 먹고 조금 쉬다가 2시에 상그릴라 탄중아루 리조트로 넘어가기 전에 점심을 먹기로 했다. 블로그에서 추천해 준 레스토랑을 찾아가기로 했다. 구글맵을 켜고 갔는데 나침반 방향을 몰라서 헤매다가 결국은 꺼 버렸다.
그냥 쭉쭉 앞으로 걸어가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레스토랑 위치를 물어 봤다.
일본에 갔을 때도 아무나 붙잡고 길을 물었다. 온갖 바디랭귀지에 짧은 일본어로 생쇼를 하면 어찌어찌 알아 듣고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었다. (일본 할아버지는 길을 잃어버린 나를 데리고 30분이나 걸어서 내 숙소까지 데려다 주셨다. 너무 고마워서 와락 할아버지를 안아버렸다. 할아버지는 기분 좋게 안아 주셨다.)
이번에는 영어를 연습 할 차례라 또다시 무작정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여기서 성격이 나왔다. 40대 친구는 무조건 파파고를 돌렸다. 50대 친구는 나보다 영어를 월등히 잘 하는친구였는데 부끄러움이 많고 영어를 완벽한 문장으로 구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쉽게 말문이 터지지 않았다.
오지랖이 넓고 염치가 없는 나는 짧은 영어 실력으로 만나는 온갖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라 그런지 대체로 영어가 잘 통했고 친절했다.
그러다가 만난 사람이 샌디였다.
"익스큐즈미, 웨얼 이즈 씨푸드 레스토랑 니얼히얼?"
"어머, 한국 사람이세요? 저도 한국에서 왔어요."
내 발음이 신통찮았는지 생긴게 딱 한국 사람이었는지 샌디는 대번에 우리의 국적을 맞히고 오랜만의 모국어에 신 나했다. (배낭의 묘미는 이런 거다. 뜻밖의 장소에서 재밌는 인연을 만난다.)
"아!!! 그 레스토랑 별로에요. 다른 좋은 데 많아요."
뙤약볕에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샌디는 오랜만에 만난 동족에게 동지애를 느꼈는 지 쉴 사이 없이 자신의 정보를 읊고 있었다.
"저.. 샌디...남편분 밥 차례 준다고 장 본다고 하지 않았나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알아서 먹겠죠!"
"...... 음, 그러면 우리 어디 카페라도 가서 예기할까요? 너무 더워요."
"네 좋아요!!! 여기 유명한 올드카페 있어요. 떼따릭 맛집이에요."
그녀는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했고, 우리는 그녀와 1시간을 이야기하고 코타키나발루의 모든 정보를 섭렵하며 아쉬운 포옹을 했다.
(그녀가 알려준 조그마한 소품 가게는 예쁜 엽서들을 많이 파는 아기자기한 가게였다. 엽서 몇 개를 사서 방에 붙여 두니 제법 운치가 있다. )
" 포항에 오면 꼭 연락하세요. 제가 맛있는 물회집 꼭 데리고 갈게요."
이루어지지 않을 약속을 하며 다시 힘차게 포옹했다.( 전화가 되지 않는 말레이시아 유심을 사서 통화 할 수가 없어 그녀에게 톡을 했는데 뭐가 잘 못 됐는 지 연락이 안됐다.)
배낭은 이렇게 설렘 가득한 온정을 느끼게 해 준다. 개고생을 무릅쓰고 배낭여행을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