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적인 가장 미국적인
다양한 러시아의 식재료로 버무린 완벽한 헐리우드식 미국 소설
모스코바의 신사를 다 읽고 난 내 감상평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처음 몇 장을 읽었을 때는 작가 약력을 다시 들췄다.
이 사람 미국 사람이야? 러시아 사람이야?
그만큼 헷갈릴 정도로 러시아의 문화, 정치 상황과 역사에 해박했다.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러시아 대문호의 작품을 몇 권 읽는 수고를 덜 수 있었고, 섬세하게 묘사된 러시아 귀족의 삶을 한 편의 영화처럼 볼 수 있었으며 , 볼세비키 혁명 이후의 혼란한 러시아의 역사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어 지적 수준의 단계가 훌쩍 상승하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자료와 지식이 있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올해 안에 짧은 단편 웹소설이라도 하나 써 볼까 깨작거리던 내 전투력을 급격히 상실시키는 역작이기도 했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메트로폴 호텔에 감금 생활을 하게 된 우리의 주인공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의 30년이 넘는 호텔 유배지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인용할 때 많이들 쓰는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를 충실히 이행한 로스토프는 호텔 안에서 긍지 높은 귀족의 자만을 버리고 호텔의 직원들과 친구가 되며 심지어 늙어서는 자신 역시 호텔의 웨이터 역할을 자처한다. 우즈베키스탄 아버지를 따라 호텔 손님으로 온 영리한 어린 니나와는 둘 도 없는 영혼의 단짝이 되기도 하며 도도하고 아름다운 여배우 안나와 오랜 세월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남편을 찾으러 떠난 니나의 딸인 소피아를 맡아 졸지에 아버지 노릇까지 한다.
썩어도 준치라고 제법 숨겨놓은 금화도 있어 긴요한 물건이 필요할 때면 호텔 뒷구멍으로 거래를 하기도 한다. 작고 초라한 방이기는 하지만 자신만의 방에서 몽테뉴의 수상록과 안나까레리나를 읽기도 하며 매 식사마다 호텔 주방장이 차려준 음식을 맛본다. 이쯤 되면 황제 노역인가
뭐 그렇다고 마냥 행복하기만 했겠는가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던 콧대 높은 귀족이 가택연금이라는 명목으로 평생을 갇혀 자유를 빼앗기고 때론 은근한 모욕도 당하며 자신의 존재가 역사의 뒤 안길로 사라져야 할 투명인간으로 여겨 질 때 자살을 결심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해피엔딩이다. 그것도 완벽한 헐리우드식 결말로 ....
등장인물과 배경은 온통 러시아인데 스토리나 감정선은 다분히 미국적이다.
그래서 별로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래서 정말 재미있다. 미국식 특유의 박진감 넘치고 생동적이지만 가벼운 스토리를 묵직한 러시아식 소재로 버무려 균형을 잘 맞춰 놓았다.
그래서 그런가 영화로 만든단다. 주인공역이 이완 맥그로우란다. 미국인인 그가 러시아 말을 쓰지는 당연히 않을 것이며 아마 그럴 듯한 헐리우드 영화로 만들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백 번 양보 하더라도 로스토프는 190cm 가 넘는다고 !! 177cm겨우 넘는 이완 맥그로우가 맡을 인물이 아니라고!! 키가 뭔 대수냐고? 음... 이건 상징적인 거라고....
문득 궁금해졌다.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은 러시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고증까지 완벽한 러시아의 소설이라고 할까 영화 글라디에이터를 말도 안되는 영화라고 코웃음 치던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러시아를 하나도 모른다고 흥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