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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Dec 16. 2022

환생한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희곡 '심판'

당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은 지금처럼 남자로 태어나고 싶은가 또다시 여자로 태어나고 싶은가

어느나라에서 어떤 외모로 태어나고 싶나

능력에 상관 없이 직업을 고를 수 있다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나

부모님들은 어떤 분들이면 좋을까

당신의 배우자는 어떤 사람이면 행복할까

어떻게 죽고 싶은가?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도 행복한데 내가 선택한 삶을 살 수 있다니( 로또에 걸리면 뭐할까 같은 희망 고문에 가깝지만 어쨌든)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뭐가 되면 좋을까 하늘의 별따기라는 외무고시를 봐서 외교관이 돼 각국의 지도자들을 만난다면 진짜 멋지겠지? 한 번쯤 놀라서 뒤돌아 볼 정도의 외모를 가진다면..... 아빠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학자이고 엄마가 아름다운 여배우라면 나는 태어나자마자 지성과 미모를 가진 여신이 되는 거야....

와...세상은 아름다울 거야.....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지은 희곡 '심판' 에서 주인공 아나톨은 폐암으로 죽어 심판대에 오른다.

검사인 베르트랑은 아나톨의 죄를 물어 환생이라는 형벌을 내릴 것을 판사에게 호소한다.

(이 대목에서 좀 신기했다. 우리 동양의 사고관으로는 착한 일을 해야 다시 환생할 수 있는데 베르베르는 환생을 형벌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는게 고행이라 그런가  아니면 육신을 버린 영혼의 세계가 더 높은 차원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나톨의 죄도 별거 없다.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고 순응주의에 빠져 산 죄다. 

검사인 베르트랑이 죄를 묻는다. 너는 너의 재능을 어떻게 썼느냐? )

환생의 형벌에 처해진 아나톨에게 가브리엘 판사는 선택권을 준다 . 

"시작합시다. 남자가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여자가 되고 싶습니까?"

"그래도 남자로 태어나면 좋겠어요."

"좋아요. 항목1번 남성. 다음은 국적을 선택할 차례군요."

"맛있는 치즈 없으면 못 살거 같아요. 프랑스에서 환생하겠어요."

"알겠습니다.피숑씨, 부모는 어떤 스타일이면 좋겠어요?"

유머러스한 베르나르의 상상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장면이다. 


내가 선택해서 환생한다니.... 그러면  지금 주어진 나의 삶도 내가 선택한 삶이란 건가? 

술꾼에 욱하는 성질의 아빠때문에 살얼음 같았던 유년기를 보냈는데 그런 부모를 내가 선택했다고?

음... 좀 욱해서 그렇지 한 번도 우리한테 손찌검을 하지는 않으셨지.. 짜증이 많고 신경질적이기는 했지만 생활력 강한 엄마 덕분에 등록금 한 번 내 손으로 번 적은 없었네.. 내가 선택한 건가?

예민하고 지랄맞은 백면서생같은 남편을 내가 선택한 거라고? 음 이건 반박의 여지가 없군.

보수적이고 성차별 심한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난 것도 내 선택이라고?

음... 경제부흥기에 태어나 대학만 졸업하면 취직이 널려있긴 했었지. 밤길이 무섭고 여자라서 겪은 수모도 많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얻은 행복도 많아. 다시 태어나도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

과외선생이라는 불안정한 직업 때문에 많은 혜택을 받는 제도권 선생님들을 그렇게 부러워 했는데 이것도 내가 선택한 거라고?

어... 하긴 게으름의 극치인 내 성격에 낮에 실컷자고 내 마음대로 시간을 조정할 수 있고, 능력과 의지에 따라 돈을 얼마든지 벌 수 있고, 내 마음에 안 들면 단칼에 아이들을 잘라버릴 수 있는 프리랜서의 삶도 나쁘지는 않지...

어? 뭐지? 

불만으로 가득한  현재 삶이 왜 갑자기 그럴듯 해 보이지?


"... 출발할 때 우리에게 카르마 25퍼센트, 유전 25퍼센트, 자유의지 50퍼센트가 주어져요." 

"우리가 지금 정하고 있는 건 당신의 카르마에 해당하는 25퍼센트라는 사실을 알아둬요. 당신이 무의식의 소리에 계속 귀 기울일 때 펼쳐지게 될 인생 경로인 거죠.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징표들이 끊임없이 이 삶의 여정을 당신에게 일깨워 줄 거에요."


지금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은 전생의 내가 갈구한 카르마와 현생의 내가 자유의지로 결정한 삶의 결과물인가?

책의 내용은 온통 죽음에 대한 이야기인데 나는 지금 이승의 삶을 더 잘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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