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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Nov 04. 2022

'그리스인 조르바'는 자유로운 영혼이 아니다.

내가 만난 알렉시스 조르바는 ....

나는 생을 걸쳐 조르바를 세 번 만났다.

고등학교 때 만난 조르바는 완전 짱 멋진 할아버지였다.

도자기를 만드는 녹로를 돌리는데 새끼 손가락이 거슬린다고 손도끼로 새끼 손가락을 과감히 확 잘라버리는  이 할아버지는 손톱 하나 잘 못 깎아서 살이 약간 집혀도  생 난리를 치는 엄살쟁이 나에게 육체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비웃는 카리스마 넘치는 영웅이었다.

이 영웅은 젊은 시절부터 늙은 나이까지 수많은 여자들과 연애를 하고 딸뻘이나 되는 여자와도 사랑을 한다. 심지어는 거의 70이 다 되는 나이에 25살 채 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는다. 와!!! 정력짱!!!

닮고 싶었다.

춤도 잘 춘다. 우연히 만난 러시아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아 하루종일 춤으로 대화를 한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 대화일까? 춤으로 어떻게 대화를 한다는거지? 감정을 표현한다면 그나마 이해를 하겠는데 춤으로 대화를 한다고? 어린 나는 이해가 안됐는데 늙은 나는 이제는 이해가 된다. )

버찌 사건은 또 어떤가

"나는 버찌에 미쳐 있었어요........... 버찌가 날 데리고 논다는 생각이 들어 속이 상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한 줄 아시오? "

조르바는 아버지의 돈을 훔쳐 버찌를 한 소쿠리 사서 토할 때까지 먹는다. 그리고 그날부터 버찌를 먹지 않는다. 담배와 술도 이런식으로 끊어 버린다.

"나는 내 정열에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카아 멋지다!!! 조르바 짱!!!

17살 나는 조르바 할아버지의 말에 너무 큰 감명을 받아 그를 인생의 스승으로 삼았다. (나 역시 무언가를 먹고 싶거나 하고 싶으면 토할때까지 먹고 한다. 미친듯이 먹고, 미친듯이 했다. 일테면 이런거다.

대학생 때 담배를  2년 넘게 피웠다. 머리가 아플때까지 피웠다. 졸업하는 4학년 겨울 내가 왜 담배를 피우는 지 의미를 찾지 못해 끊어 버렸다. 그 후 30년간 담배를 피운 적이 없다. 아주 간혹 술자리에서 한개피 피웠지만 1년에 한 두번 있을까말까하다. )

그는 나의 동경의 대상이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처럼 살고 싶었다.


30에 만난 조르바는 완전 개망나니였다.

도자기 만드는데 자기 손가락이 거슬린다고 손가락을 잘라버린다. 미친놈이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 것 같은데 산투르를 깨끗한 마음으로 켜야한다고 마누라랑 아이를 버리고 방랑길에 오른다. 수십 명의 과부를 만나 사랑을 하고 버리고 버려지고 또 늙은 나이에 딸같은 과부와 결혼해서 애를 낳는다. 책임감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늙은 망나니였다.

조국을 위한답시고 사람을 죽이고 마을을 불지르고 강도짓도 하고 일가족을 몰살하기도 한다.

여자비하도 가관이다.

"여자를 보는 남자는 모두가 여자를 갖고 싶다고 말해야 합니다."

"여자는 힘이 없는 피조물이오"

"웃지 말아요 두목, 여자가 혼자 잔다면 그건 우리 남정네들의 잘못이에요."

"나는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자유를 원하지 않아요. 그런데 여자도 인간일까요?"

"여자도 우리같은 사람입니다. 품질이 좀 떨어질 뿐이지요. 여자란 지갑을 보면 돌아 버립니다."

자기랑 잔 여자들의 치모를 모아 베개를 만들고, 자기를 도와 준 과부와 하룻밤을 자고 자신의 적이라는 이유로 과부의 마을에 불을 지른다.

'나'에게 돈을 받아 물건을 사러 갔다가 젊은 여자애를 만나 돈을 탕진한다.

수도원의 수도승을 꼬드겨 수도원에 불을 지르게 한다.

'나'의 돈으로 케이블 고가선을 개통하고, 대차게 말아 먹고 실컷 먹고 마시고 '나'와 춤추고 서로 헤어진다.

이런 조르바를 영혼의 안식처로 생각하고 존경하고 사랑한 '나'도 도긴개긴 같은 놈이었다.

하긴, 그리 금욕주의자인척 하더니 마을의 젊고 아름다운 과부와 동침을 하고도 그녀가 살해당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약한 책나부랭이에게 뭘 기대하겠나?

조르바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장한 문란하고 무책임한 노인네에 지나지 않았다.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50에 다시 만난 조르바는 ... 아아 ... 조르바는 너무나 따뜻하고 인간적인 ...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선 내 늙은 오라비였다.

겉으로는 강하고 호탕한 남자였지만 한없이 연약하고 가엾은 인간이었다.

".... 내게 아주 겁이 나는 문제가 하나 있어서 두목에게 물어 봐야겠습니다. ... 늙는다는 것은 창피한 노릇입니다. 나이를 먹어가는 걸 인정한다는 것은 예사 창피한 노릇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걸 눈치채지 못하게 별짓을 다하는 거지요."

"속에 있는 조르바는 나이 먹는 걸 싫어해요. 속의 조르바는 사람을 잡아 먹는 도깨비예요..... 언제까지 두 조르바가 맞붙어 싸워야 합니까?"


어린것들이 할배라고 놀리며 젊은 여자를 데리고 가는 조르바를 비웃자 창피해하며 검은 머리로 염색한다.

말로는 암컷이라고 말하며 여자를 요물취급하지만 그 어떤 인간들보다 여자들을 소중히 대한다.

"하느님이 당신같았더라면 마리아를 찾아가지 않았을테고, 그랬더라면 그리스도는 태어나지 못했을거에요....하느님은 마리아에게 가셨다. 마리아는 과부다.어때요?" (난 이 문장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책을 읽는내내 왜 과부의 이야기가 이 책 전반에 그리 많이 나오는가에 대한 의문을 이 문장에서 이해했다.)

"여자는 꽃병같은 거에요. 아주 조심해서 만지지 않으면 깨져요."

"우리 남자가 여자 앞에서 울음을 터뜨려 버리면, 이 가엾은 것들은 어쩝니까?"

'나'가 장난으로 오르탕스 부인에게, 조르바가 청혼했다고 거짓말을 하자 조르바는 오르탕스 부인이 절망할까봐 어쩔수 없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약속해버린다. (결혼이 그녀에게 구원이라는 걸 조르바는 알고 있었다.)

젊고 아름다운 과부의 거절에 상심한 청년이 자살하자 복수라는 명목으로 마을 사람들이 그녀에게 돌을 던지고 칼로 위협했을 때 조르바는 온몸으로 마을 사람들에 맞서 그녀를 구하기 위해 애쓴다.

나약한 지식인인 '나'가 어쩔 줄 모르고 지켜보고 있는 사이 조르바는 피를 흘리며 이 가엾은 마리아를, 젊은 과부를 구하려고 했다.

니코스가 얘기한 '초인'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 장면이 아마 이 장면이 아닐까


젊은 시절 크레타의 혁명을 외치며 살인과 방화를 한 늙은 조르바는 외친다.

"조국을 위해서랍시고 태연하게 했습니다. 나는 사람의 멱을 따고 마을을 불 지르고 강간하고 일가족을 살해했습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내 조국이라고 했나요? 조국같은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조르바는 자유와 혁명이라는 명분으로 전쟁과 약탈을 일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잔인한 것인지 일갈한다.

나는 조르바를 '자유로운 영혼'의 표상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조르바는 너무나 많은 인간적 고뇌와 한계와 아픔을 지닌 가엾은 영혼인데.....


조르바가 죽는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참 많이도 울었다.

"그 사람을 생각하더라고 전해주시오. 그리고 나는 무슨 짓을 했건 후회는 하지 않더라고 해주시오...

아.. 나같은 사람은 천년을 살아야 하는 건데....."

-이게 그분의 유언입니다. 그는 창틀을 거머쥐고 먼산을 바라보다 눈을 크게 뜨고 웃다가 말처럼 울었습니다.이렇게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 있을 동안 죽음이 그를 찾아 왔습니다-


서서 죽은 조르바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말처럼 울면서 죽은 그는 무엇때문에 눈을 크게 뜨고 웃다가 울었을까?

나는 왜 그런 조르바를 보며 꺽꺽대며 울었을까...

17살의 조르바는 책속의 영웅이었지만 50살의 조르바는 호탕하고 인정많고 따뜻하고 푼수같은 동네 오빠였다. 그래서 열일곱의 나는 조르바의 죽음에 울지 않았고 쉰의 나는 조르바의 죽음에 목놓아 울었다.

일흔에 내가 조르바를 다시 만난다면 나는 어떤 마음일까 .....

죽기전에 크레타 섬이나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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