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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티나인 Feb 10. 2024

엄마, 나 결혼할래

1. 딸의 남자친구들

"엄마, 사실은 나 사귀는 사람있어. 만난 지 두 달쯤 됐어."


25년차 모태솔로인 딸이 식탁 앞에서 눈치를 보며 내게 얘기했다.

조선 시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큰애가 노처녀로 늙어 죽을까봐 걱정이었는데 사귀는 사람이 있다니 반갑고도 고마웠다.

"진짜? 언제부터? 뭐 하는 사람인데? 몇 살이야?"

"음... 나이는 나보다 8살 많고,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혼자 키우셨대. 군인이었다가 얼마전에 전역해서 조그마한 하청업체 다니고 있어. 어머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오빠가 어머니 책임지고 있고...나한테 굉장히 잘 해 줘. 착해"

점점 굳어가는 내 표정이 불안했는지 착하고 잘해준다고 몇 번을 반복해서 말했다.

"그럼, 사귀는데 안 잘해주는 사람도 있냐? "

까칠한 내 말에 괜히 말했다는 얼굴로 앉아 있는 딸을 보니 욱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 앉았다.

"너희들 깊은 사이야? 떨어질 수 없을 만큼 그 오빠가 좋아?"

"아니, 한 여덟 번 쯤 만났어. 아직은 좋은 줄 모르겠어. 그냥 만나면 마음이 편해. 왜 엄마는 별로야?"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를 그의 배경만 듣고 반대하는 속물적인 내가 스스로도 역겨웠지만 내 아이만 생각하기로 했다.

"네가 그 오빠를 너무 좋아해서 절대 헤어질 수 없다면 엄마는 말리지 않아. 근데 그게 아니라면 다시 생각해 봐. 나이도 많고,직업도 불안정하고, 자식이 하나라는데 나이 많은 노모를 혼자 살게 할 수는 없을거야. 네가 같이 모셔야 하고, 경제적인 부분도 네가 어느정도 분담해야 할 거야. 그럴 자신이 있어? "

"..........."

"처음 사귄 사람이지?"

"응"

"그럼 엄마가 제안하나 할게. 싫으면 거절해도 돼. 다른 사람들도 한 번 만나 봐. 여러 사람들 만나 보고 나서도 그 오빠가 정말 좋으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보면 안될까?"

순하고 성정이 여린 큰애는 내 말에 갈등하는 것 같았다. 깊은 사이는 아닌 거 같아 안심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다 큰 아이의 연애사에 개입해도 되나 나도 갈등이 되었다.

하지만, 앞이 뻔히 보이는 고난의 길은 나하나로도 충분했다. 아이가 거절하면 깨끗이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럼 오빠랑 헤어져?"

"엄마가 뭐라 말 할 수 없어. 그건 네가 판단해야 해. 네가 앞으로 더 나갈 자신 있으면 계속 사귀고 아니면 다른 사람도 만나보고 결정해. "

속은 타 들어 갔지만 나중에 원망 듣고 싶지 않았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싶어한다는 남자의 말에 큰 아이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하루만 시간을 줘."

그러고마 하고 이야기를 끝냈다.


"엄마, 나 다른 사람도 만나볼래.오빠랑은 그만 만날래"

엥? 뭐가 이렇게 빨라? 너무 빨리 결단을 내리는 큰애에게 오히려 내가 어리둥절했다.

"생각해보니 나도 처음 만난 남자랑 결혼 하고 싶지는 않아. 엄마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도 자신이 없어.

엄마가 소개해 줘"

그래... 고맙기는 하다만 이래도 되나?

본적도 없는 아이의 남자친구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애는 착하다는데... 내가 너무 간섭했나... 우리아이가 첫사랑이라는데 나때문에 괜히 잘 사귀는 애들 .... 아  모르겠다. 인연이면 다시 만나고 아니면 끝이겠지..

얄팍한 양심에 끙끙대는 내 앞에서 아이는

"괜찮아, 손만 잡았는데 뭘..."

무심히 말했다.

큰애의 단순함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남자 보는 눈을 넓혀 보라고 나름 발이 넓고 소위 좀 사는 집과 친분이 있는 한의사인 언니한테 부탁했다.

조카 좋은 혼처자리 좀 알아봐 달라고 ..

성격들이 다 똑같은 우리 자매님들은 하루만에  지역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엄청난 집안을 소개해주었다.

"엥? 언니가 그 집을 어떻게 알아?"

"응? 그 집 큰딸이 내 고등학교 동창 베프야. 걔 아들내미한테 조카 사진 보여 줬더니 대번에 보자고 하던데?"

 고등학교 때 별명이 조선미인이었던 큰아이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던지 다음 주 바로 소개팅이 결정 되었다.

소개팅을 나간 아이가 돌아 올 때까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뭐 괜찮던데? 아는 것도 많고, 외국 여행도 무지 다녀서 그 나라 얘기 해주는 것도 재밌었어."

진짜? 다행이다.

남자아이도 큰애가 좋았는지 적극적이었다. 큰애가 감기에 걸려 아프면 1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달려와 자기 엄마가 손수 만든 차를 주고 가기도 했다.

한 달을 무난히 만나는 것 같았다.

와... 나 잘하면 이집이랑 사돈 되는 거 아냐?

할아버지가 학교 재단 이사장이고, 온 가족이 엄청난 학벌에..그 언니도 큰 사업체를 하고 있고, 어마어마한 부지를 가지고 있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런 집으로 내 아이가 시집 가면 고생은 하지 않겠지... 그래 엄마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거야... 역시 내딸...


"엄마 나 그 오빠가 안 사귈래.. 싫어"

"뭐? 왜?"

"키가 너무 작아 키가 나만해 아.. 나보다 작나?"

"얘가 뭐래? 야!! 결혼하면 외모는 아무쓰잘데기 없어.. 엄마보면 몰라? 엉?"

"아 !!그래도 싫어. 만날 수록 사람이 좀 까칠하고 예민해."

"야.. 사람이 마냥 좋을 수가 있냐.. 남자가 좀 까칠하기도 하고 그래야 함부로 안 보이지."

돈에 눈이 멀어 마구 지껄여 댔다.

"싫다고!! 아빠랑 성격이 똑같아!!!"

"!!!................. 오케이... 바로...... 정리해 ......."

"엄마 못 믿겠어.그냥 내가 찾아 볼래."

그러더니 같은 유치원에 다니던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세 번 째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 남자가 바로 내 미래의 사위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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