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해자 둘레길에서 매일 고양이 밥을 주시는 분이 있다. 혼자 그 지역 일대를 커버하자니 버겁다며 누군가 도움 줄 만한 분을 알면 소개해 달라고 하셨다. 정말 힘들 때 보조를 확실하게 해 주실 분을 만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그래도 내게는 은토끼님이 계신다. 거기다 내가 꼭 가야 하는 날에 공원에 가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이쁜이 엄마가 그 역할을 흔쾌히 해 주신다.
해자 둘레길은 내가 봐도 구역이 너무 넓어 힘들어 보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캐리어에 냥이들 건사료와 캔 그리고 물병까지 챙겨 다니시는 모습이 안쓰럽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시는 걸 모르려야 모를 수 없다. 토성 위에서 초화와 삼색이 밥을 주고 걷다 보면 항상 그분의 모습이 내려다 보이기 때문이다.
공원에서 고양이를 돌본다고 이야기하시는 분 중에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어 보이는 남자분 전화번호를 물어 알려드렸다.
그런데…. 얼마 전에야 내가 실수한 걸 알게 되었다. 그 남자분이 해외로 골프 여행인가를 두 달 동안 갔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쓰여 돌본다는 녀석을 찾으러 다닐 때였다.
미술관 주변은 고등어 아들 고니의 사체가 발견된 곳이다. 그 주변을 나는 가을부터 겨울 두 계절 동안 가능하면 피해 다녔었다.
그날 두리번거리며 녀석을 찾아다니다 공원 고양이를 나보다 더 오래 돌보시는 남자 집사님을 만난 건 우연이었다. 고양이들 밥을 주다 보면 다양한 일을 겪는다. 도움을 청해야 할 일이 생기면 이것저것 물어볼 정도의 안면이 있는 분이었다.
내가 놀란 건 과도(칼) 사건이 경위였다. 그분은 자기가 마련해 둔 겨울집을 누가 가져가 엉뚱한 데 있어 그걸 원 위치에 돌려놓았더니 어느 날 그 위에 과도와 함께 막말 섞인 협박장이 붙어 있어 화가 났다는 이야기셨다. 나는 아주 당혹스러웠다. 고양이 겨울집이 필요하면 본인이 비용을 들여 마련해 줘야 하는 건 당연지사.
두 사람 중에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는 분명했다. 그 남자 집사님은 공원 냥이들에 무한관심을 가지고 돕는 분이시다.
배낭에 든 사료와 물을 꺼내 급식하는 모습을 본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여자 집사님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드리려고 노력하시는 모습도 종종 보았다.
구내염 걸린 고양이 사진을 들고 찾아다니는 걸 보고 고양이에 대한 남다른 애정에 놀라기도 했다. 심지어 공원 냥이들 중성화를 위해 포획틀까지 가지고 계신다.
나도 고등어 포획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아롱이도 그분이 포획을 해 주셔서 중성화를 할 수 있었다. 그때 포획해 중성화를 시키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것은 동물병원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지원되지 않는 아롱이 추가 치료비도 그분이 부담하셨다. 아롱이가 포획되어 병원으로 이송되던 날 추가 비용은 다음 날 가서 내겠다고 치료 부탁을 드렸었다. 하지만 이미 병원비가 완납되었다는 걸 알고 돌려드리겠다는 걸 끝까지 사양하셨기에 나는 지금도 그분에게 미안해한다.
그런 분에게 과도를 놓고 협박문을 써 놓다니???
해자 주변 급식을 도와줄 사람으로 소개한 나는 사건의 경위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
토성 둘레길에서 기다리는 냥이들 밥을 주고 해자 주변 급식을 하시는 여 집사님을 만났다. 사람을 잘못 소개해 죄송하다고 했더니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진즉에 알았다며 괜찮다고 하셨다.
나는 나이가 들면 사람 인성을 잘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아니었다.
공원에서 겪는 소소한 이야기를 쓰는 내 입장에서 과도 사건의 진위는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과장된 말에 속아 도대체 누구를 고양이 집이나 부수고 다니는 못난 놈이라고 욕한 거지 싶으니 부끄러웠다.
어려운 일을 기꺼이 하더라도 다툼을 부르는 말과 행동은 정말 조심해야 하는데.
매일 고양이 급식을 하시는 분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고양이라는 생명을 돌보는 데는 시간도 돈도 체력도 어쩔 수 없이 든다는 걸. 매일 같은 장소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냥이들의 생존도 이런 희생이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걸.
해자 주변 고양이 겨울집에 깔아준 모포에 이틀에 한 번은 물을 부어 놓는 사람이 있단다. 강추위와 눈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꽝꽝 얼어붙은 모포를 꺼내 버려야 하는 사람 마음을 알까? 내 생각과 다르다고 냥이들 추위를 막아줄 그 알량한 겨울집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옳은 걸까?
공원 고양이들을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라. 그 아이들은 자기 것이라고 말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저절로 느끼게 된다. 늘 무언가에 쫓기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도 금방 알 수 있다. 사람이 건네는 밥을 먹으면서도 수시로 주위를 살피는 걸 보면 말이다. 다 살기 위해 생명을 갖고 태어났는데. 그게 녀석들 탓도 아닌데.
토•일요일마다 귀요미 자리 건사료 그릇에 일부러 물을 부어 못 먹게 만드는 어떤 놈(?) 때문에 그나마 있던 내 이해심(차라리 주변 배고픈 새들에게 뿌려줬다면 이해가 되었을 거다)이 바닥나 나도 모르게 험한 소리가 나온 날.
공원도 사람만의 것이 아니니 서로 공존하려는 마음이라도 생기게 공원 냥이들의 힘겨운 삶을 열심히 전달해 보자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