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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Mar 01. 2024

까만 고양이를 키우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아~ 왜애~! 아침부터 까만 고양이 사진은 보내고 그래?"

"응? 우리 까미 사진인데 왜???"

친구가 조금 찔끔한 것 같았다. 

"난 까만 고양이만 봐도 그날 나쁜 일이 한 가지씩 생겨!"

이게 무슨 소리람? 까만 고양이랑 사는 나는 둔해서 그런 걸 느끼지도 못하는 건 아니겠지?

사람마다 다들 성향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어도 살짝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30년 이상 알고 지낸 친구 사이인데. 그렇게 몰랐을까? 내가 공원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러 다니는 걸 알면서도 부정적인 말 비슷한 소리도 한 적이 없어 더 그랬을 수도 있다.


 한파나 폭설이 내리는 날에도 주섬주섬 냥이들 캔과 간식 그리고 사료를 챙겨 물병까지 들고나서는 나에게 남편이 가끔 '지나치다'며 잔소리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비밀번호를 누른다.


 "까미 엄마, 밥 굶겨?"

까미가 조르는 자리에 앉아 있다. 요구사항을 안 들어주면 살짝 말썽을 부린다.

 고양이나 개를 반려로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 있다. 녀석들이 집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다. 

 가족 내 정점의 자리에 누가 있는지~. 까미도 우리 집에서 그런 존재다. 작은 아들이 입양한 아롱이 딸 나리도 마찬가지다. 직업 특성상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나리는 반드시 바가지를 긁는단다. 옆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옷을 잡아 뜯는 것으로. 

작은 아들이 기르는 아롱이 딸 나리. 눕고 싶어 엄한 표정으로 침대에서 내려가라고 해도 비켜나지 않는다.

 2019년. 그해는 내게 여러 이별이 찾아왔다. 4월 엄마가 돌아가셨다. 7월, 초등학교 울타리 공사장 구덩이에서 발견해 키우던 녀석이 13년 만에 고양이별로 돌아갔다. 뭐라도 먹이려고 사들인 각종 간식과 건사료를 붙박이장 하나 가득 남겨둔 채. 

 소중한 것들이 하나씩 사라진다는 생각 때문인지 심리치료등으로 완치된 듯했던 공황장애가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만큼 마음이 힘들었다. 

 

 공황장애로 일 년 가까이 지하철을 타지 못했었다. 물론 비행기도. 

 가끔이지만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숨 막힐 것 같은 증상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공황장애는 걸려본 사람이 아니면 절대 이해 불가다. 심리적으로 그런 상태가 있다는 걸 나도 걸려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 신경줄이 굵고 강하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러다 이렇게 정신이 무너질 수도 있구나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

 공황장애는 사회적 동물이었던 나를 가족적 동물로 축소시켰다. 몇 년 동안 내 반경은 화성과 공원 그리고 집이 전부였다. 결국 은퇴 후에도 했던 인근 학교와 제주 고등학교에서의 논술이나 독서강좌를 모두 정리했다.


 그리고 <권가네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권가네 이야기>는 우리 가족 이야기다. 가족과의 사별로 인한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고 공황이라는 정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신과 치료도 한몫했지만 그동안 미뤄둔 숙제처럼 쓴 가족 이야기가 더 큰 역할을 했다. 오 남매가 공동 작업으로 가족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2019년 겨울을 나던 아롱이와 귀요미 남매. 봄이 되자 아롱이만 남고 귀요미와 노랑이가 사라졌다 귀요미만 수개월만에 돌아왔다.

  엄마가 돌아가신 그 가을. 아롱이와 귀요미 남매를 만났다.

 <공원 냥이 아롱이>에 그 이야기가 모두 들어 있다. 

 고양이별로 돌아간 녀석이 남긴 사료와 간식들이 떨어지자 먹이를 사게 되었다. 그곳을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였다. 이런 과정 모두에 나의 착한 척이 들어있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말한다. 


- 고양이에게 낚였다고. -


 공원에서 고양이를 돌보는 분들을 만나면 다들 이렇게 말한다. 게다가 나와 비슷한 서사를 가졌다는 데 더 놀란다. 

 처음에는 귀요미가 제일 사람을 잘 따랐다. 하지만 은토끼님이 수개월만에 되찾아오셨을 때는 사람에 대한 경계가 무척 심한 녀석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절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아롱이는 여전히 주는 밥은 먹으면서도 얼마나 앙칼진지 근접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아롱이 남매는 나무 타기에 천재들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일 년 2개월 만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엄마가 우리 집 골목으로 걸어오시는 꿈을 꾼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내가 연이은 집안 애사와 정서적인 문제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사람이나 고양이나 삶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할까? 

<권가네 이야기>를 마치고 쓰기 시작한 <공원 냥이 아롱이>는 내게 일기 같은 기록이다. 

까미의 낮잠. 사람이 다가가도 그냥 잔다

 인생에 변수가 생기는 걸 막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을 나는 별로 본 적이 없다.

 은퇴하기 전 나는 공원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걸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롱이와의 만남을 통해 나는 두 아들을 키우며 겪었던 각종 추억을 소환했다. 무엇보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노심초사하고 희생하는 아롱이에게 진심으로 매료됐다. 겨우 두 살인데???

입양 초기 식탁 위로 올라와 일기 쓰기를 방해하던 까미

  까미는 아롱이 첫 번째 새끼 넷 중 한 녀석이다. 그중 아로만 고양이별로 돌아가고 까로와 아미는 은토끼님이 입양해 아로 새끼 두 마리와 같이 키우신다. 공원에 남은 귀요미 입양을 번번이 실패하시고 내린 결정이다. 경계가 심한 귀요미(중성화 전문가들에 포획되어 두 번이나 잡혀갔다 돌아왔다) 입양을 포기하기까지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내가 모르면 누가 알겠는가?


 아롱이는 다음 해에 다시 새끼 셋을 낳았다. 중성화를 위한 포획에 실패해서다. 셋 중 한 녀석인 나리를 작은 아들이 입양해 키운다. 

  공원에는 아롱이 귀요미 까미 동생 고등어와 사랑이가 남아 있다. 고등어 새끼 고니는 지난여름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했다. 박물관 주변에 새끼가 태어나지 않은 지는 2년이 되어간다. 중성화 사업이 소용없다는 말을 내가 믿지 않는 이유다.


 <고양이 밥 주는 건 괜찮다고 해 고맙다고 말할 뻔했다>는 댓글에 여러분들이 고양이 밥 주는 문제점을 지적해 주셨다. 고양이 밥 주는 게 사람이나 자연에 어떤 물적 피해를 주는지 알려주고 싶으신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대답은 분명하다. 

 - 고양이 밥 주는 걸 그만둘 수 있을 리 없잖아요. 까미 엄마랑 동생들이 거기 있는데...-

입양 전 까미와 아미. 은토끼님이 입양하신 아미는 고양이가 이기적 동물이라는 내 편견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집에서 기르는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가족이다. 

 까미는 밤마다 내 팔을 베고 잔다. 내 품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느낀다. 까칠했던 아롱이는 지금은 나를 개처럼 따라다닌다. 그런데도 입양을 못한 이유는 이미 밝힌 바 있다. 

 남편은 털 알레르기로 냄새를 못 맡는다. 치매인 줄 알고 대형병원까지 가 각종 검사를 받고야 알게 되었다. 까미를 입양하면서 제일 고민한 문제가 그것이었다. 냄새 맡기를 포기하는 게 어떤 건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가끔 눈 질끈 감고 까미 입양을 포기했더라면 남편은 냄새를 되찾았을까? 전에 기르던 녀석이 고양이별로 돌아간 뒤 냄새를 조금씩 맡을 수 있다고 했으니 아마도! 


 우리 가족은 모두 까만 고양이를 입양해 키우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나조차 오래 까만 고양이는 불길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까미가 어디 숨어 보이지 않으면 등줄기가 싸해진다. 행여 녀석이 현관문을 나섰을까 봐 정신없이 주변을 찾아다닌다. 

 


 - 아롱이 귀요미 그리고 고등어와 사랑이가 밥 먹으러 나올 때까지~

 나는 공원 고양이들 밥을 주러 갈 것이다. 아무리 날씨가 험악해도 도저히 그 얼굴들이 아른거려 집에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너만 착한 척이냐 욕먹어도 어쩔 수 없다. 차라리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며 조언을 해도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만이 꼭 의미가 있느냐고.


 아롱이 귀요미는 올해 여섯 살이다. 고등어 사랑이는 네 살이다. 녀석들이 고양이별로 돌아가 더 이상 밥 먹으러 나오지 않을 때를 상상만 해도 나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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