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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Feb 13. 2024

 고양이 밥 주는 건 괜찮다고 해 고맙다고 말할 뻔했다

"아저씨! 저기 비둘기 모이 주지 말라고 써 붙인 거 못 봤어요. 비둘기 밥 주지 마요~"

순간 움찔했다. 장년의 남자 어른 목소리라 그런지 주변이 다 쩌렁거렸다. 귀요미 자리에서 고양이 밥을 주고 있던 나나 산책하다 잠시 벤치에 앉아 있던 사람들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모이를 주워 먹던 비둘기들도 놀라 퍼덕거릴 정도로 크고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고양이 급식소 주변에는 비둘기만이 아니라 까치 등 다양한 새들이 찾는다.

 제법 연세가 있어 보이는 아저씨가 작은 봉지에 든 뭔가를 비둘기에게 쏟아주다 날벼락을 맞는 기분을 느끼신 것 같았다. 들고 계시던 봉지를 털어대는 몸짓이 화가 나 보였다. 

 장년의 남자가 한 번 더 큰소리로 비둘기 밥 주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다. 목소리가 더 커진 느낌이었다.

 알았으니 그냥 가던 길이나 가라는 볼멘소리가 들렸다. 


 고양이 밥을 주고 있는 나에게 불똥이 튈까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비둘기 밥 주지 말라는 말을 한 장년의 남자는 말싸움 중에도 내쪽을 보며 "고양이 밥 주는 건 괜찮지만."이란다. 긴장해 숨까지 참았었는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두 사람의 언쟁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점점 거칠어지더니 공원에 신고한다는 말에 젊은 놈이 나이 든 사람에게 무슨 말을 그따위로 하냐에서 막판에 경찰서로 가자는 소리로 번졌다. 경찰서로 가서 따져보자는 소리에 장년의 남자는 비둘기 밥 주지 말라는 소리를 한 번 더 강조하고 가던 길을 서둘러 갔다.


 명절 기간이라 사람들 출입이 제법 많은 데도 세상이 조용해진 느낌이었다. 급긴장해 있는 나를 흘깃 보던 귀요미와 다롱이 그리고 아픈 냥이 셋이 먹던 밥을 마저 해치우기 시작했다. 나도 긴장이 살짝 풀렸다.

조릿대 속에서 나오지 않고 밥을 청하느라 부스럭대며 존재를 알리는 턱시도 냥이. 구내염이 심해 약을 먹여도 차도가 없다. 그런데도 겨울을 견디고 있다.

 귀요미 자리는 미술관과 박물관 주차장으로 가는 세 갈래 길 주변에 있다. 사람들의 통행이 심심치 않다 보니 잘 숨겨 놓는다고 숨겨 둔 겨울집과 급식소를 누군가 툭하면 뒤집어엎는다. 그곳 출입에 신경이 곤두서는 이유다. 

 게다가 다롱이는 친한 척이 하늘을 찌른다. 내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바지에 털을 비벼댄다. 온몸으로 자기를 각인시키면서도 밥을 먹으러 가까이 다가오려는 귀요미를 빠짐없이 괴롭혀 내 혼을 빼놓는다. 조릿대 사이에는 갈수록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구내염 걸린 턱시도 녀석이 수시로 부스럭대며 자기 존재를 알린다. 한 마디로 정신 사나운 곳이다. 

 자꾸 누군가 겨울집을 뒤집어 놓고 사료통을 발로 차 엎어버리는 통에 누군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기만 해도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다. 고양이들은 영역 동물이라 밥자리를 쉽게 옮기기도 어렵다. 

경주 근처 양남에 있는 주상절리의 기막힌 풍경
경주 양남 주상절리

명절 첫날. 지난 추석에 다녀오지 못한 시부모님 성묘를 갔다.

새벽 5시 조금 넘어 송파에서 출발. 12시 전에 울산 호계에 도착했다. 곳곳에 정체가 있었지만 명절에 이 정도면 선방한 거였다.

 동대산 인근에서 콩나물국으로 아점을 해결하고 산에 올라 성묘를 마쳤다.

거기까지 갔다 성묘만 하고 돌아올 수 없다는 내 주장대로 차를 마시러 간 곳은 경주 양동 주상절리. 오랜만에 바다를 봐서인지 마음이 확 뚫린 기분이 다 들었다.

 커피 한 잔 곁들여 케익을 간식으로 먹고 서둘러 출발했다. 밤 9시 조금 넘어 집에 도착. 돌아오는 길은 평일보다 고속도로가 더 한산해 다행이었다. 종일 차 안에 갇혀 있던 거나 마찬가지여서 정말 피곤했다.

 오전에 이쁜이 엄마가 공원 냥이 급식을 마치셨다고 연락하셨었다. 연휴에는 은토끼님이 휴무라 미리 부탁을 드렸더니 기꺼이 바쁜 일정에도 공원에 나가 나 대신 임무를 완수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제법 먼 길을 오간 데다 산행까지 했더니 혓바늘이 돋을 정도로 피곤. 공원은 들러보지도 못하고 그냥 잠이 들었다.


 설날 당일.

 집에 온 손님들을 위해 약간의 상차림을 했다. 오전에는 공원을 나가 어찌어찌 급식을 했는데 오후에는 공원에 나가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도 오전에 다 만나 한 번이라도 제대로 밥을 먹였으니 내일 일찍 움직이자 마음먹고 누워버렸다.


 명절 연휴 3일 차. 명절 연휴에 낀 주일이라 서둘러 공원을 나갔다. 이틀간 급식을 한 번만 한 냥이들에게 그날은 두 번을 하려고 서둘렀다. 

 비둘기 모이 사건은 서둘러 급식을 마치고 예배 시간에 맞춰 움직이려 하다 생긴 일이다. 고양이 밥 주지 말라는 소리를 들은 건 아니지만 기운이 쭉 빠졌다. 

 토성에서 기다리는 두 녀석에게 가기 위해 칠지도 계단을 올라가는 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둘기에게 모이주지 말라면서 '고양이 밥 주는 건 괜찮다'라고 한 장년의 남자에게 나는 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적어도 그 사람은 급식통을 엎어버리고 겨울집을 망가트리지 않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냥 이해받아서???


 요즘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일이 가능한가 싶은 때가 많다. 만약 그 장년의 아저씨가 고양이 밥 주지 말라고 나를 몰아붙였다면 나도 곤경에 처했을 것이다. 아니 민망함 때문에 내 내성적인 트리플 A형 성격에 마음고생이 장난 아니었을 터였다. 

내 바지에 온몸을 비벼대는 까미 엄마 아롱이. 요즘 아롱이는 이런 식의 애정 표현을 자주 한다
아롱이 딸 나리. 제 엄마처럼 꼬리를 얌전히 말고 앉는다.

귀요미 자리에 갈 때 나도 집에 남아 있는 해묵은 재작년 쌀을 조금씩 들고나간다. 겨울이라 먹이 구하기에 어려움을 겪는 새들을 자주 목격하기 때문이다. 가끔 쌀을 줬더니 영악한 비둘기들이 내가 나타나면 거의 군단급으로 몰려든다. 그날은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나 대신 혼이 나는 바람에 쌀을 주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비둘기에게 쌀 주는 걸 들켰으면 어땠을까? 고양이 급식에 비둘기에게 쌀까지. 두 해를 묵어 밥을 하면 냄새가 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치곤란의 쌀이지만 말이다. 


 또 한 가지 든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옳은 말인 데도 듣는 사람은 재수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같은 말을 해도 상대방 기분이 상하지 않게 돌려 말하기. 그것도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국어교사 수십 년 한 내 책임도 있다고 느꼈다. 말 좀 곱게 하는 법을 더 제대로 가르칠걸. 

 같은 내용의 말도 조용히 부드럽게 해서 듣는 사람이 불쾌하거나 심지어 민망하지 않게 하기. 서로 욕설까지 주고받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어쩌면 이 모든 사태가 내 탓처럼 느껴졌다. 겨우내 쌀을 비둘기와 까치에게 준 나는 정작 그 사달을 피해 갔는데~.


 장년의 남자도 상대방이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고 더 말투 조심을 했으면 어땠을까?

  

 새 모이를 일부러 챙겨 오시는 분이라면 비만 비둘기가 생태계에 문제를 일으키므로 사회에서 금지하는 일이라는 걸 민망하지 않게 조용히 말해도 알아들으셨을 텐데.


 제법 많은 사람들 앞에서 민망한 사달을 겪으신 분이 그날 밤 잠이나 제대로 주무셨을까? 

 거기까지 자꾸만 생각이 뻗어나가는 건 나도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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