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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Feb 03. 2024

주변이 환해 보인다

 전주 금요일 친구들 모임에 참석했다 심하게 체했다. 오한과 두통 그리고 극심한 피로감과 복통까지 밤새 잠을 잘 수 없었다. 내가 아는 병들이 종합 세트로 내 몸에 찾아온 것 같았다. 그 밤은 있는 약으로 대충 버텼지만 상태가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다음 날은 토요일. 주말과 월요일은 공원 냥이들 급식을 꼭 해야 한다. 

억지로 일어나 공원 냥이들 급식을 하러 갔다. 복통이 심해 전날 저녁과 아침 두 끼를 걸렀더니 다리가 휘청거렸다.

아롱이는 능선 명자나무 아래 낡고 오래된 이 집에서 나온다

 이 겨울. 

 아롱이는 첫 번째 새끼들이 지냈던 낡고 오래된 이 집에서 나온다. 첫 번째 새끼들이 모두 입양되고 폐쇄했던 곳이다. 은토끼님이 새 집을 마련해 주고 아무리 들어가라고 해도 들어가지 않더니 어느 날부터 여기서 나온다. 은토끼님은 예민한 아롱이가 들어가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하며 방석을 교환해 주셨다. 

 다행히 아롱아하고 부르면 앞에 늘어진 비닐을 들추고 고개를 쏙 내민다. 아롱이가 거기서 나올 때면 구름 많음 날씨여도 주변이 환해진다.

 아롱이가 어디서 자는지 알 수 없을 때는 강풍이 불거나 강추위와 찾아오면 나도 모르게 창밖을 자꾸 내다보게 되었다. 다행히 이 겨울집은 여섯 살 된 까미와 나리 엄마 아롱이에게 핫팩이라도 넣어줄 수 있다.


  극도의 피로감과 한기로 야외활동이 어려울 정도여서 다음 날은 결국 이쁜이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입양한 냥이들을 위해 장롱 위도 숨숨집으로 쓰게 만들어주셨다. 하양이와 콩콩이가 특히 이 장소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부탁은 어렵게 했는데 답변은 명쾌할 정도로 선선하셔서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고양이들에 대한 무한 사랑이 나에게는 행운이자 선물이다.

사랑이는 제 엄마 아롱이만큼 체격이 작고 귀엽게 생긴 암컷이다. 겨울집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다.
사흘 동안 독감으로 결근을 하신 은토끼님 대신에 오전 급식을 하러 가신 이쁜이 엄마가 동영상을 보내주셨다. 

 오전 급식을 다녀오신 뒤 동영상을 보내주셨다. 사랑이는 이쁜이 엄마를 정말 좋아한다. 하긴 이렇게 꿀 떨어지는 소리로 부르며 밥을 주러 오시는데.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기 좋아하는 사람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까?

 덕분에 조금 느지막이 오후 급식을 위해 집을 나섰다. 자꾸 잠이 오는 걸 간신히 털고 일어났다. 급식소 두 군데에 건사료만 대강 채우는 데도 힘에 겨웠다. 

 

 그래도 초화에게는 가봐야 했다. 시간은 이미 평소보다 많이 늦어 있었다. 전날도 찾지 못했는데 어딘가 숨어 기다릴 녀석에게 안 가 볼 수가 없어 올라갔더니 없었다. 몇 번 주변을 오락가락해도 나오지 않았다.


  한기와 피로감 때문에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천근은 되는 기분이었다. 남편의 암 발병으로 육류를 대폭 줄여 기운이 달리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여기저기 처박아둔 영양제라도 꺼내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다 들었다.


 토성까지 올라갔는데도 허탕을 쳐서인지 마음이 좀 상해 있었다.

컨디션 난조는 사소한 문제도 일으킨다. 그날 잊은 것은 물병이었다. 귀요미와 다롱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근처 화장실로 물을 가지러 다녀온 시간은 겨우 십여분. 그 사이였다.

잠시 물을 받으러 다녀온 사이 누군가가 급식소를 밟고 뒤엎어버렸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다롱이 잠자리로 쓰던 겨울집도 발로 차 엎어서인지 다롱이가 무서워 접근을 못하고 있었다.

 은토끼님이 만들어주신 급식소는 사람들 시선을 피한 곳에 있다. 


 지난가을 이후 공원 사람들의 통행이 비교적 적은 곳이라도 대대적인 벌목 작업을 했다. 잎이 마른 조릿대만이 아니라 잡목들이 잘려나가 그 사이에 숨겨 두었던 냥이집들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곳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안 되는 장소에 있다. 무엇보다 은토끼님이나 나는 누군가 함부로 버린 주변 쓰레기까지 수시로 치운다. 


 토성에 먼저 다녀오려고 아롱이와 사랑이 그리고 고등어 급식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나마 없던 기운이 더 빠져버렸다.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면 가족들이 급긴장할 것도 알고 있다. 나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원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집으로 데려다 키우라고 주장한다. 그럴 때마다 화가 난다. 난 아직도 고양이들이 야생에서 사는 게 옳은 건지 입양하는 게 맞는 건지 판단이 되지 않는다. 

 은토끼님과 내가 공원에서 입양한 고양이들은 모두 여섯이다.

아롱이 딸 나리. 작은 아들이 입양했다. 8개월 만에 입양했다
식탁 위에 올라와 졸고 있는 까미. 녹내장 때문에 실명할 가능성이 있어 6개월 만에 입양했다

기르던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는 친구에게 사랑이를 입양해 달라고 부탁하려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친구의 말 때문에 이야기를 더 진척시킬 수 없었다.


 '내가 녀석들보다 먼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덥석 집으로 데려올 수 없어.'


  사람은 언제 하나님이 부르실지 모른다. 나이가 들면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거라고 예측할 뿐이다. 돌연사로 남편을 황망하게 떠나보낸 친구 앞에서 결국 나는 말을 흐렸다.


 입양의 이유가 다양한 것처럼 공원 고양이들도 다들 사연이 있다. 공원 고양이들을 돌보는 사람들 또한 각자의 사연과 집안 사정이라는 게 있다. 정말 열심히 매일 거르지 않고 공원 냥이들을 돌보시는 분들은 입양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서로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입양된 냥이들에 대해서도 물어보는 일을 삼간다. 그게 서로 간 이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아롱이와 사랑이 고등어를 찾아 오후 급식을 하는 데 잡념이 자꾸만 생겼다. 컨디션은 난조에 마음까지 상해 버려서인지 돌아오는 걸음이 천근은 되는 것 같았다. 사람 같지도 않은 놈(?)의 행동때문에 마음이 자꾸 가라앉았지만 나를 다독거렸다. 

 

 추위를 피해 겨울집에 들어가 잠을 자 주는 것만도 고마워 주변이 다 환해진다는 걸, 그런 마음도 있다는 걸 그 사람은 죽어도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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