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시작됐지만 형제들의 모임은 쉽지 않았다. 주말마다 눈비가 섞여 내렸기 때문이다.
새해가 20여일이나 지나가지만 함께 모여 가족들 안부를 나누려 화성 청요리로 향했다.
오전. 일기는 구름 많음이더니 점차 이슬비로 변했다. 일기가 좋지 않다고 더 미룰 수도 없어 그냥 집을 나선 것이다. 이슬비가 제법 뿌렸다. 다행히 날이 푸근했다. 강추위가 아닌게 얼마만인가? 비가 눈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그것만 해도 어디야 하며 남편과 청요리에 도착. 남매들과 늦은 새해 인사를 나눴다.
봄을 재촉하는 비라면 마음이라도 푸근해지는 여유가 있겠지만 겨울비는 한기를 불러온다.
그리고 도착해서야 깨달았다. 한기가 특히 어디에서 오는지를.
세 마리 개를 보는 순간이었다.
녀석들의 간식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나를 본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격하게 반기는 녀석들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려 시선회피를 했다. 그 열렬한 반김을 외면할 수밖에~.
비는 대개 바람과 함께 온다. 창고의 문을 열어놓을 수 없었다. 같이 떡국을 한 그릇씩 나누고 난로에 구운 떡도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창고 밖에 불을 피워도 추운 건 마찬가지.
결국 집 안을 벗어나지 못했다.
내 그림자만 어른거려도 녀석들은 뭔가를 바라는 시선으로 자꾸 쳐다봤다. 내 움직임에 민감하다 못해 집요할 정도였다. 개들의 간식을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나를 탓하는 느낌이 다 들었다. 이제 고양이들만이 아니라 개들 눈치도 봐야 하나?
시선을 떼지 않는 데다 내가 움직이면 그대로 따라온다. 목줄을 덜그덕거리며.
작은 오빠에게 까망이 얘는 왜 여기 묶여 있느냐고 물었다. 추울 텐데. 그러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강하게 키운다나 뭐라나. 비가 뿌리는 데도 풍찬노숙을 시킨다는 막내의 말에 살짝 찔끔하며 핑게를 대는 느낌이었다. 개들을 강하게 키워 어디에 쓰냐는 듯한 내 말에 신경이 쓰였는지 불쌍한 생각이 들면 개집에 넣어준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람이와 까망이 두 녀석이 수시로 개줄을 풀고 치는 사고가 장난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 신발 한 짝은 어느 집에서 물어 왔는지 모른단다. 여느 동네처럼 주로 노년층이 많은 청요리 어느 어르신이 갑자기 없어진 신발 한짝을 찾지 못해 허둥대실 텐데... 어이가 없기는 했다. 그렇다고 마을 방송을 하기도 우습기는 했다.
창고는 태행산 산자락이라 인가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는데 어느 집인지 알 수가 없어 그냥 방치하고 있다고 했다. 창고 주변으로 산책을 다니시는 마을 어르신 중 한 분이 자기 신발 한짝을 우연히 거기서 발견하시면 뭐라고 하실지 참~ .
다른 집 논밭에 들어가 농작물을 파헤치지만 않아도 다행이라고 해야할 판이란다.
까망이 녀석은 앞에 놓인 나무 토막을 자꾸 물어뜯는다. 이빨이 튼튼하니 개껌이라도 하나 물리면 좋을 텐데.
말로는 강하게 키우려고 방치한다면서 작은 오빠는 녀석들을 알뜰하게 살핀다. 아침마다 동네 한 바퀴 산책은 기본이고 먹는 것도 부족함 없이 챙긴다. 매일 돌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녀석들을 가끔 보는 나로서는 매번 폭풍성장한 것으로 보였다. 말썽도 아무나 부리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아무리 사고를 쳐도 끌어다 혼낸다는 게 목줄 묶어놓기가 전부다. 하긴 집안 내력이 동물이나 사람에게 약해 빠졌으니. 안 봐도 알 것 같다
막내 동생과 남편은 화로 곁을 벗어나더니 주변 산자락에 벌목해 놓은 나무들을 가지러 손수레를 끌고 나섰다. 막내는 청요리에 들를 때마다 작은 오빠 혼자 나르기 힘든 장작들을 챙겨다 주려 애쓴다. 심지어 해 본 적도 없어 어설픈(남편 말이다) 톱질까지 해 땔감을 만든다. 작은 오빠까지 따라 나선 그 틈에 화목난로에서 혼자 익어가던 가래떡과 간식들을 녀석들에게 슬쩍 가져다 줬다. 물론 녀석들의 한입거리다. 돌아서기도 전에 삼켜버리고 다시 내 손으로 바쁘게 눈동자가 오간다.
돌아오는 길. 남편에게 다음에 내가 청요리 간다고 말하면 개껌이랑 개 간식은 준비했냐고 꼭 물어봐 줘 했다. 물론 그때까지 이런 말을 했다는 걸 기억이나 할까? 요즘 둘이 어딜 다니다 보면 사오정들의 여행이나 마찬가진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