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영순 May 25. 2024

고양이들에게 부탁을 하고 왔다

“삼색이. 너 말이야. 앞으로 일주일 나 못 오거든. 너도 밥 먹으러 나와서 기다리지 마. 알았지?”

손가락으로 일곱을 헤아리며 눈을 똑바로 보고 이야기했다.

녀석은 ‘들고 있는 캔과 닭가슴살이나 빨리 주지 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야.’

하는 표정이다.

 서둘러 닭가슴살을 주니 얼른 물고 비켜난다. 미심쩍어 한 번 더 녀석에게 손가락으로 일곱을 헤아리며 부탁을 했다. 과연 이 부탁이 먹힐까? 안 먹혀도 할 수 없지만 매일 오던 사람이 오지 않으면 어쩔??? 제법 긴 시간(인근에 이 녀석들 먹이를 매일 챙기시는 분이 있다. 그런데도 나와서 기다린다.) 기다릴 텐데. 그래도 할 수 없지 싶어 돌아섰다.

초화 밥자리에 빠짐없이 나와 밥을 청하는 삼색이.
삼색이한테 밀려 조금 후미진 곳에서 나와 밥을 청해 먹는 초화

 이번 제주행은 두 달 만이다.

 큰오빠의 제주 이주로 부모님 기일에도 육지에 있는 4남매는 참석을 하지 못한다. 겸사겸사 나만 제주에 들러보기로 했다.

 가는 김에 지금 한창일 수국이나 실컷 보고 오자 싶어 가족들에게도 이해(?)를 구했다.

공원 장미원에 활짝 핀 장미들

  공원 장미원은 장미의 짧은 시간을 즐기려는 사림들로 한낮에도 인산인해다. 박물관은 장미원과 다소 거리가 있지만 화창한 날엔 사람들 여가 활동이 왕성해서인지 평일에도 인파가 만만치 않다.

 이런 때에 어디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이해만이 아니라 공원 냥이들 급식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미술관과 박물관 세 갈래 길 모서리 조릿대 주변에는 귀요미와 다롱이가 나온다. 그곳 급식소는 조릿대 수풀 속에 설치해서인지 또 민달팽이들이 창궐했다.

검사료통이 매일 이 지경이다.
물그릇에도 달팽이들이 들어가 수영을 즐기는 모양새다


 건사료 그릇은 물론 물그릇에도 수영을 즐기는 민달행이가 몇 마리나 있다. 민달팽이가 지나간 자리는 손으로 만지기 두려울 정도로 끈적거린다. 무엇보다 물컹거리는 녀석들을 나도 모르게 만져야 해서 소스라치게 놀란다. 작년 '어떤 달팽이의 소행일까?'라는 글을 보시고 소금 처치법을 댓글로 알려주신 분이 있었다. 잊지 않으면 왕소금을 가져가 뿌린다. 그 소금에 저절로 절여지는 달팽이에게 미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는 스스로를 무수리과라고 정의한다. 오 남매의 고명딸이라는 자리는 귀한 딸로 호사하는 자리가 절대 아니다. 일하는 엄마의 빈자리를 메꾸다 보면 온갖 집안일에 저절로 익숙해진다. 당연히 공주나 왕비과와는 저절로 손절하게 되는 자리다.


 그런 나조차도 민달팽이의 물컹거림은 저절로 소름이 돋는다.


 내가 가끔 놀라는 것은 은토끼님의 깔끔함이다. 나와는 달라 저절로 경의를 표하게 만든다.

 공원 냥이들은 수시로 맨 흙바닥을 뒹굴고 잡초와 나무 덩굴 더미 속을 헤집고 다닌다. 물론 내가 봐도 공원 관리가 소홀한 건 아니다. 그런데도 웃자라는 잡풀들 줄기에 각종 진드기와 이름 모를 벌레들이 바글바글이다.

 그 수풀을 헤치고 다니며 급식을 해야 하는 터라 행여 집냥이 까미에게 옮길까 봐 입고 나갔던 옷을 벗어 세탁물에 넣는다. 나만 해도 이런데 늘 쓰레기봉투까지 챙겨 수시로 냥이들 집을 대여섯 개나 청소하고 관리하시는 은토끼님은? 나도 모르게 ' 복 받으실 것 같다!'는 마음이 생긴다.

고양이집. 은토끼님은 수시로 고양이 집을 청소하신다.

  얼마 전 풀 깎는 작업을 하시는 분이 작업에 방해가 되고 지저분하다며 은토끼님에게 싫은 소리를 했단다. 속상해하시는 말을 들으며 잔디가 없는 구조물 주변에 설치된 냥이 급식소 위치를 잘 알기에 고개가 저절로 갸우뚱해졌다. 박물관 지킴이들인데 이해 좀 해 주시지 하는 구시렁거림과 함께!

이쁜이 엄마는 공원 냥이 이쁜이 가족을 입양해서 이렇게 키우신다. 얼마나 냥이들에게 지극정성이신지...

 은토끼님 휴무일 공원 냥이들 밥은 이쁜이 엄마에게 부탁드렸다.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가족은 같이 살아야 한다며 공원 냥이 넷을 한 번에 입양해 아가씨와 도련님들로 키우고 계신 분이다.

 급식을 부탁드려도 아롱이 가족들이 움직이는 장소에 대한 설명 외에는 더 말할 게 없다.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이런저런 인복이 정말 많은 거 같다.


 가방을 꺼내 짐을 싸는 데 까미 분위기가 싸하다. 얼른 캐리어에 들어가 앉는다.

"까미야. 엄마 없어도 형아랑 아빠 말 잘 듣고 있어야 해!"

 들은 척도 안하고 가방에 머리를 쳐박는다.


 며칠 전 일본 영화 촬영에 합류하게 된 작은 아들이 로케를 보러 일본에 5일 다녀온 뒤 나리의 앙탈이 장난 아니었다며 여기저기 할퀴고 물린 자국을 보여주었다.

자주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모습이 애잔하기까지 하다.

 집사가 어디 가는 걸 좋아할 냥이들이 없는 건 알지만 까미나 나리 행동이 웃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이번 제주행은 비행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훨씬 줄어든 게 느껴졌다. 항상 통로 안쪽으로 좌석을 정했는데 이번에는 창가로 선택했다. 한동안 공황장애로 인해 지하철도 못 탔는데... 공황도 서서히 내게서 물러가는 느낌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제주의 밤바다 모습

몇 년 만에 해 지는 제주의 바다와 일몰을 제대로 느끼며 제주로 왔다.

작가의 이전글 자꾸 뒤돌아 보게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