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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이사

by 권영순

나리가 제 집으로 돌아갔다.

작은 아들은 나리를 본가에서 데려가지 못한 상태로는 이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사라는 미션에서 난이도가 가장 높은 게 고양이 이사라고 보일 정도로 심란해 했다.


제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내 마음도 어수선하긴 마찬가지였다.

'저 녀석을 어떻게 보내지?'


“나리야. 오빠가 엄마한테 가자~ 그러면 야옹야옹야옹 하면서 이동장에 들어가야 해. 네가 겁난다고 엉뚱한 데로 뛰쳐나갔다 엄마랑 오빠 못 찾으면 큰일 나잖아. 나리 보호하려고 넣어두는 거야. 나리 똑똑하니까 엄마 말 알아들었지? “


말똥말똥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런 말을 하다 결국 울컥하고 말았다. 나리와 동복으로 태어나 얼마 전에 흔적 없이 사라진 사랑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가 많이 심약(?)해진 모양이었다.


아롱이 딸 나리를 임보한 시간은 작은 아들의 이런저런 사정상 4개월을 넘어간다.

임보 하겠다고 했을 때 시간이 걸릴 거라는 건 예상했다. 하지만 이렇게 이별이 힘들어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들과 둘이 알콩달콩 살 집이 마련되었으니 아무 문제없는데 왜 마음은 뒤숭숭하다 못해 서글플까?

'그동안 아옹다옹하며 잔정들을 들여서~'

식탁 위에 올라와 앉은 나리

지난해 5월 작은 아들은 마곡나루에 있던 사무실을 고양시에 있는 지식산업센터로 옮겼다. 사무실 공간이 넓어 각종 촬영 장비를 보관하기 수월하다고 했다. 그 사무실의 특장점은 장비가 있는 사무실(작은 아들의 사무실은 무려 10층에 있었다) 앞에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시스템이란다. 게다가 각종 편의시설은 물론 구내식당에 헬스장도 있다고 했다.

아들 사무실 안은 사무실이라기보다 장비 보관소처럼 보였다.
생각보다 정리를 잘하고 있어 의외였다.

아들 둘을 키운 엄마지만 아들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무슨 일을 하던 조언을 삼가 왔다. 내가 아들들 대신 세상과 상대할 수는 없으니 본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믿어서였다.


영국에서 돌아온 작은 아들은 독립을 선언하더니 용산 원룸을 얻어 집을 나갔다. 거기서 1년 이상 지내더니 화곡동에 방 2개짜리 작은 빌라로 이사한 후 나리를 입양했다. 취업 대신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사무실을 낸다고 알렸을 때도 알았다고 말했다.


집을 사무실 근처에 구했다며 알렸을 때부터는 왜 마음이 어수선했을까?

작은 아들이 이사 간 향동 집 주변. 한적하고 조용한 데다 인근에는 개천도 있어 산책도 할 수 있었다

나리를 입양해 살던 화곡동도 생소하게 느껴졌었다.


고양시 향동은 전철도 닿지 않는 곳이다. 더구나 나는 서울의 동쪽 끝에 살고 있다. 화곡동도 멀었는데 이번에는 전철역에서 경기도 똑타버스를 불러야 하는 고양시 향동이라니??? 50년을 서울에 살면서도 지나가 본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곳으로 이사라니.


작은 아들도 서울에서 태어나 영국살이 빼고는 서울을 벗어나 산 적이 없다.

'서울에 작은 전세 하나 얻어줄 형편이 안 되는 부모를 만나 결국 이렇게 먼 곳까지 와 살아야 하는구나?' 이 마음이 나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향동에 직접 가서 작은 아들을 따라 사무실(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을 둘러보고 나리가 살 집도 살펴보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 없었다.


인근 대학에서 강의를 마치고 작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와 나리를 데려가던 날.

아침부터 싸락눈이 내리더니 오후가 되면서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캣타워를 해체하고 고양이짐(내가 향동을 갔을 때 짐의 일부를 가져갔었다)들을 차에 싣고 본가를 나섰다. 그날은 나리를 이동장에 넣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작은 아들이 데려올 때는 손등 여기저기 할퀸 자국이 있었다. 이동장에 갇히자 처음에는 소리 내 울더니 점차 조용해졌다. 한강 다리를 건너갈 무렵 덮어두었던 담요를 일부만 살그머니 걷어줬다. 불안한 표정이었다. 나도 모르게 나리를 보며 자꾸만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동장 무서워하지 말고 오빠가 엄마 보러 가자고 하면 야옹야옹하고 대답하고 본가에 오라고.'


본가가 있는 송파에서 고양시 향동까지는 강변북로를 이용해 한 시간이 걸렸다. 아침부터 눈까지 내려 마음이 더 심란했었는데. 며칠 전 이사한 집을 보러 왔을 때보다는 시끄러웠던 속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아마 동네 모습이 조금 익숙해 보여서였을 것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캣타워를 설치하는 작은 아들. 무게가 제법 나가 선지 땀을 다 흘렸다.

향동에 도착할 무렵 분분히 날리던 봄눈이 그치더니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침실에 나리를 위한 자리까지 마련해 주는 걸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리가 머물던 방 작은 침대에는 녀석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분명 제 자리를 찾아간 나리의 흔적이 왜 이렇게 커다란 빈자리로 다가오는지. 두고 올 때는 제 집에 돌아갔다 싶어 안심되더니. 이게 사람 마음일까?

제 집으로 가기 전에 깔고 자던 베개에 나리의 털이 잔뜩 묻어 있다.
이동장에서 나와 돌아다니다 다시 되돌아가는 나리. 아들이 영상을 보내줬다.

불 꺼진 방.

앞으로 특별한 일이 없으면 불이 켜지지 않을 작은 아들의 방을 한동안 서성대다 당산역까지 바래다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하던 아들의 말을 떠올렸다.

"엄마. 나리 없다고 너무 적적해하지 마. 그동안 툭하면 안방에 갇혀야 하는 까미한테 너무 미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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