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양이가 또 보이지 않는다

by 권영순

고등어가 보이지 않는다.


"너는 또 어디 있니?"


은토끼님은 전날 밤

“내일 보자~”

이렇게 헤어졌다며 울먹거리셨다.


집 위에 앉아 말똥거리며 쳐다보던 녀석이 다음 날부터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도 수시로 응석을 부리듯 밥을 청하던 녀석을?


‘봄이 지나가고 있으니 봄바람이 난 모양이다.’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이미 2년 전에 중성화를 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갔을까? 녀석도 걱정이지만 충격을 받고 괴로워하실 은토끼님도 걱정이었다.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올해는 4월과 5월도 추웠다. 비도 자주 내렸다.

고양이들은 따뜻한 곳을 기막히게 알아차린다. 매일 두 개씩 핫팩을 넣어줘서인지 고등어는 겨울에서 봄 사이 집 근처를 벗어나지 않았다. 오전에 나가보면 집에서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며 나왔었다.


그런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나 또한 포기가 될 때까지 공원 곳곳을 돌며 고등어를 불러봤다. 이미 은토끼님이 찾아볼 수 있는 곳은 다 찾아보신 모양이지만.


나이 탓인가? 다리도 발도 불편함을 호소한다. 하긴 60년 넘는 긴 시간 사용하기만 했으니 삐꺽거리는 게 당연하긴 하다.

왼쪽 발 뒤꿈치의 통증 때문에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녀석의 흔적을 찾는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아니면 누가 무슨 목적으로 데려갔을까?

눈 속에서도 밥을 먹던 사랑이. 제 엄마 아롱이와 같이 지냈었다.

나는 남편의 대동맥 시술 날짜가 잡히면서 마음이 허공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공원 냥이들에게 소원했던 것도 사실이다.


밥 먹을 시간이면 어김없이 하늘공원 기슭을 따라 달려내려오던 사랑이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괴로운데 이제 고등어까지! 어디 가서 녀석을 찾아야 하나?


고등어는 은토끼님 옆에 붙어 사는 녀석이었다. 캔을 하루 6개씩 수시로 먹이는 사람이 있는데 어딜 가겠는가?

입양해 키우시는 고양이 넷은 비만이 걱정되신다며 철저하게 절식을 시키시는 분이 은토끼님이다. 하지만 고등어는 입양을 못해줘 미안하다며 수시로 먹이신다. 그것도 제법 고가의 캔으로.


고등어 녀석이 환풍구 근처에 있을 때는 밥을 먹이러 다니시다 비탈길 풀밭에서 미끄러져 다리를 다쳐 한 달 넘게 휴직을 하신 적도 있다. 복직하시는 전날 고등어 아들 고니가 사라졌었다. 유별나게 사람을 따라 누가 입양해 키우면 사랑 많이 받을 녀석이라며 안타까워 하셨다.


고등어는 22년에 아롱이 딸로 태어나 다음 해 고니 남매를 낳았었다. 하지만 고니는 미술관 주변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고등어는 같이 태어난 나리나 사랑이처럼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그냥 무늬를 따라 고등어라고 불렀다.

일박 일정으로 지방 촬영을 다녀오면 작은 아들 무릎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나리
간식을 조르는 나리

아롱이 딸 셋 중 작은 아들에게 입양된 나리는 행복할까? 바쁘게 사는 작은 아들 덕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다.

화곡동보다 통창이 많은 고양시 향동이 나리의 심심함을 덜어주기를

이름도 지어주지 않고 밥만 주던 녀석이라 더 그럴까?

고니까지 없어지고 고등어 혼자 거의 2년을 지냈다. 고양이는 원래 독립적인 성향들이라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한다고 하긴 했었지만 제 엄마 아롱이 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랑이와는 또 달랐던 녀석이다.

하늘공원 능선으로 나를 따라다니던 고등어.

아직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랑이만 생각해도 마음 한켠이 먹먹한데.

이 환풍구 아래에서 한동안 고등어와 아들 고니가 나왔었다


은토끼님이 고등어가 자던 집에 붙여 놓으신 메모

녀석은 배고프면 눈에 뵈는 게 없다. 차량이 출입하는 입구를 막고 앉아 밥을 조른다.

고양이를 보호하려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녀석이 비켜날 때까지 클랙션도 누르지 않고 기다려 주시는 분들이 제법 되는 걸 나도 봤기 때문이다. 죄송하다며 녀석을 데려갈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 주시는 분들이 많아 다행이지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박물관 지상주차장에 붙어 살던 녀석이 안 보이니 답답하기만 하다.


공원에 남아 있던 아롱이 새끼이자 까미 두 동생들은 이제 없다. 사랑이의 부재로 하늘 공원이 텅 빈 것 같다면 고등어의 부재로 박물관 주차장이 텅 비었다.

혹독할 정도로 이별을 감내하고 계시는 은토끼님을 보면 인연을 맺는 것도 이제는 망설여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문과 엄마의 이과형 아들 기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