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프면 누가 간병하지?'
내 나이 또래라면 해야 하는 질문이다. 아프지 않고 살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면 다음은?
이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 있기는 할까?
사람에게 닥치는 일 중에 유달리 어렵게 느껴지는 일들이 있다. 그렇다면 간병보험이 답일까?
되돌아보면 나는 수십 년 각종 질병 보험을 들었지만 단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다. 보험료만 성실하게 납부했다. 막상 보험이 필요한 나이가 되니 수입은 줄어들었는데 보험료 부담이 너무 커 넘사벽이 되었다는 게 현실이다. 나만 느끼는 건가? 보험료로 차라리 적금을 들었다면 지금과 같은 후회는 없을 텐데.
보험을 들었다는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 나는 얼마의 돈을 들였는지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다.
간병이라는 이름의 병이 문제가 된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기대 수명이 늘어서이다. 젊고 직업을 가졌거나 돈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때는 건강한 신체 만으로도 넘을 수 있는 허들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 시기에 부부 중 한 사람이 맡아야 할 노노간병(老老간병) 상황이 들이닥친다면?
A병원 동관 14층 1호실
2인실에 입실하며 남편의 입원이 시작되었다.
대동맥 스턴트.
복부에서 만져지는 무언가 때문에 남편은 중형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인근 대형병원으로 옮겼다. 거기서 검사를 통해 심각한 심장 혈관 막힘을 찾았다. 만약 대동맥 문제로 병원을 가지 않았으면 심각했을 병을 미연에 방지했다고나 할까. 심장 스턴트 이후 대동맥은 시술 시기를 관찰을 하다 이번에 하게 된 것이다.
남편의 대동맥 스턴트 시술 날짜가 다가오기 전부터 마음이 짓눌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속적으로 관찰했던 터라 크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70대 중반이면 몸의 이상이 발견되는 건 다반사.
심장 스턴트를 한 것도 거의 5년.
전신 마취가 아니라 일부만 마취를 한다며 남편은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심장 스턴트도 금방 퇴원했다며 이번에도 걱정 없을 거라는 소리였다.
병실은 2인실. 한강과 올림픽 대교가 훤히 내다 보였다. 싱싱하게 물이 오른 한강변 나무들이 한강물과 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1시 입원. 시술을 위한 검사들을 모두 마치고 나니 겨우 3시경.
그때부터 시간이 느리게 움직였다.
더구나 맞은편에 입원한 환자는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기침. 구토에 통증을 견디지 못해 내는 신음으로.
심호흡을 해가며 간신히 붙들고 있던 내 정서적 안정감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환자가 토할 때마다 간병하시는 분이 어깨를 두드리고 쓰다듬고 달래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딱히 도울 수도 없으니 앉아 있는 자리는 좌불안석이었다. ‘도와 드릴까요?’라고 묻기도 어려운 상황과 환경. 딱 그거였다.
병원에 와서 병을 얻어간가는 게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았다. 불안 불안한 상황에서도 저녁이 나왔다.
남편은 시끄러운 곳에서도 혼자 잘 수 있다며 집에 갔다 내일 아침에 오라고 떠밀었다. 결국 환자를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형병원인데 통합간호가 되지 않는 것에 불평을 하며. 무엇보다 수시로 토하거나 가래 끓는 기침 소리에서 해방되었다는 데 안도가 되었다면 내 인성을 의심해야 할까.
다음 날. 새벽 다섯 시. 아침 시술이라 7시 이전에도 수술실로 갈 수 있다기에 집을 나서 택시를 탔다. 아침은 금식이라고 했다. 이른 시간에도 월요일이라서인지 사람들이 넘치기 시작했다. 보호자 출입증을 재발급받아 병실로 갔더니 남편은 ‘왜 이렇게 일찍 왔냐?’며 놀란다. 시술에 대해 의연한 모습이라 다행이었다.
8시경 남편은 수술실에 들어갔다. 시술이 대강 끝나는 시간을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11시경이란다. 그러나 보호자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자리를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친절하지만 단호한 안내였다. 병원 앞 정원에 나가 빵과 음료로 아침을 해결하고 돌아오니 옆의 환자는 4시간 걸리는 투석을 하러 간다며 자리를 뜨고 있었다.
그런데… 병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마음도 불안하지만 밤새 간병해 힘들었을 보호자가 사적인 통화를 끝내시지 않아서였다. 2인실이지만 공간은 비좁았다. 통화 내용을 안 듣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밤새 간병에 지쳐서인지 환자 침상에 누우신 그분은 작년 8월에 입원한 남편 간병을 지금까지 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휠체어에 앉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다시 도돌이표로 악화되어 보호자가 잠시도 비켜날 수 없단다. 그 직접적인 원인은 담배. 중학생부터 피우던 담배는 겨우 68세의 건장한 남편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셨다.
시술이 잘 완료되었다며 연락 온 시간은 11시경. 미리 중환자실에 치약과 칫솔 실내화와 수건 등을 가져다 달라는 안내를 받았기에 3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정말 다행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면회는 어렵지만 환자의 상태가 안정적이라 하루 관찰이 끝나면 중환자실에서 바로 퇴원시켜 주겠다는 안내였다. 병실로 가 퇴원을 위해 가져간 짐들을 빼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10시경에 오면 된다기에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 세대는 부모가 병들고 약해져도 자식들에게 부양의무를 지라고 말하기 어렵다. 기대조차 못한다. 오히려 부양의무를 강조하는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시대다.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으려는 젊은이들 의식 저변에도 돌려받을 것이 없다는 마음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책임과 의무는 있되 보상을 바랄 수 없는 세대!
막냇동생이 노동부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시민운동을 폄훼하지 말고 요즘 젊은 엄마들처럼
- 더 늙기 전에 누나처럼 그래도 배운 사람들이 정부에 강력한 노인 대책을 요구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했었다.
‘제로섬 게임’이라는 무시무시한 말로 간병을 기대할 수 없는 우리 세대의 문제점을 간파한 지적이었다.
주변에 요양원에 갔다 건강해져서 제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람이 있던가?
집에서 죽는 게 소원이 된 세대.
그게 우리 세대의 딜레마다.
겨우 2박 3일.
병원을 오가며 그 시기가 코앞에 왔다는 다급한 마음이 생겼다.
남편과 같은 병실을 썼던 환자의 아내 분은 토요일에는 아들과 딸이 번갈아가며 교대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셨다. 그것도 고맙고 미안한 일이라며.
아무리 건강보험이 많이 커버한다고 해도 장기간 입원으로 소요되는 각종 비용은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솔직히 걱정스러웠다.
부모와 자식 부양에 모든 힘과 경제적 여유를 쓰고 자신은 돌볼 엄두도 못 내는 그 일이 갑자기 나에게 닥치고 있다는 자각에 괴로워지는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