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이 집을 나갔다. 결혼을 전제로 독립을 하겠다고 분가를 한 것이다.
아침부터 트럭과 사다리차가 오가고 짐이 나간 자리에 텅 빈 공간과 내가 남았다. 아니 눈물이 그렁거린 채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이 된 내가 남았다는 게 더 적절한가?
25년 동안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던 싱글 침대와 학생용 옷장을 정리했더니 그 세월만큼의 먼지가 그득했다. 뭘 어쩌지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렇게 바라던 큰 아들의 독립이었는데...
눈이 뻑뻑하고 침침한 이유는 이틀 밤의 불면 탓일 것이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큰아들과 지냈던 일들이 이 집에도 산처럼 쌓여 있다. 그 많은 영상들이 머릿속에 정신없이 돌아가니 잠이 올 리 없었다.
한국에서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숙명처럼 아들을 군대에 보낸다. 큰 아들은 논산훈련소로 입소했다. 넓은 체육관에서 살짝 고개를 숙인 채 함께 입대한 동료들을 따라 긴 줄을 이루고 가는 아들의 얼굴을 한 번 더 보려고 발돋움을 하던 그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었다. 이상하게 지금도 그 순간이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글 돈다.
돌아오는 길. 남편은 논산 그 어딘가 드넓은 논밭 사이에 차를 세우고 한동안 먹먹하게 들판을 바라보았다. 아지랑이가 실낱같이 피어오르는 3월 초. 들판에 서서 그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는 기원을 했었다.
입대 일주일 뒤. 육군에서 보내온 아들이 입고 신고 갔던 물건들이 든 박스를 보며 흘렸던 눈물.
작은 아들은 충격을 받았는지 자기가 입대할 때 극구 날 떼어 놓고 갔다.
오 남매를 하나 둘 짝을 맞춰 독립시키고 화성으로 낙향하셨던 우리 부모님도 이런 감정을 겪으셨을 것이다. 두 분 모두 돌아가신 다음 물건들을 정리하며 보니 오 남매가 학창 시절 받았던 상장이나 임명장 심지어 졸업 앨범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계셨으니 오죽할까?
https://youtube.com/shorts/-nEpM0XTLEY?si=NH28vwmwAlwEyFbH
밥을 먹이러 갈 때마다 아롱이를 데리고 박물관 위에 있는 소수레로 갔다. 그때마다 행여나 싶어 사랑이를 불러보게 된다. 결국 울적해져 아롱이의 눈치를 보지만.
아롱이라고 모를까? 우리 엄마는 고양이를 영물이라고 하셨었다.
아롱이는 새끼들을 어떤 마음으로 보냈을까? 나도 모르게 아롱이의 마음도 헤아리게 된다. 떠나보내고 남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내 모습과 겹쳐 보이는 건 사람의 마음만일까? 아니면 고양이의 마음일까?
은토끼님은 허리 통증이 심해 일주일 휴가를 쓰셔야겠다고 하셨다. 허리 통증이라면 나도 잘 아는 문제라 집안 일과 각종 약속이 잡혀 있어도 어떻게든 냥이들 밥은 굶기지 않을 테니 쉬고 오시라고 했다.
눈이 펑펑 오거나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도 빠짐없이 자기 밥을 챙겨가는 초화와 삼색이가 있어 공원 나가는 일을 거를 수도 없다.
아들이 이사를 나가는 날도 두 시나 다 되어 토성에 갔지만 두 녀석은 자리에서 기다리다 튀어나왔다. 내가 올 것을 믿는 모양이라 미안한 마음이 다 들었다.
하긴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오후 늦은 시간에 나갔을 때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며칠은 오기 힘들다고 가위표를 그리며 말해 뒀건만. 9시 전에 가도 있고 오후 늦어도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사람처럼 공원 냥이도 먹고살기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올해는 6월이 시작되는 첫날부터 쉬지 않고 일이 생겼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7월. 매일이 폭염이다.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건 더위 때문만이 아니라 떠나보낸 자리를 지켜야 하는 사람의 숙명!
빈 껍데기만 남아 개여울에 떠가는 어미 우렁이의 마음까지 헤아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