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4도!
어제는 영하 8도 그제는 영하 11도.
영하 4도라도 오늘은 마을까지 가볍다.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챙겼다. 물병에 미지근한 물을 담아 집을 나섰는데 바람까지 온화한 느낌이었다.
26년 새해 첫 날.
추워도 너무 추웠지만 기온이 오르길 기다릴 수가 없는 일이 있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은토끼님이 까미 엄마 아롱이를 끝내 찾지 못하셨다는 연락을 하셨기 때문이다.
아롱이를 찾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쾅거린다. 마음이 급해지고 우왕좌왕 찾아다니다 아롱이를 부르는 목소리는 점점 울 것 같아진다. 그건 나만이 아니라 은토끼님도 마찬가지. 어떤 마음으로 귀가 하셨는지 알기에 강추위가 몰아쳐도 일단 집을 나선 것이다.
다행히 추위는 매서워도 우중충한 날은 아니었다. 하늘이 쨍할 정도로 맑아 제주의 바다같은 진청빛이었다. 아롱이가 잘 나오는 박물관 뒤로 가 부르자마자 초소 옆 환풍구 위에서 뛰어나왔다. 그러더니 환풍구 나무를 계단 삼아 뛰어내려온다.
"아롱아!"하는 목소리가 하이톤으로 나왔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릇을 꺼내 먹을 걸 담아주고 서둘러 사진을 찍었다. 전날 제야의 타종 소리나 각종 행사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흥성거림에도 전혀 흥이 생기지 않으셨을 것이다. 날은 추운데 밥도 못 먹은 아롱이 걱정으로.
전날은 송구영신 예배에 갔었다. 31일 밤 10시 30분 시작 1일 새벽 1시 13분에 마쳤다. 안수까지 욕심을 내 받다 보니. 그 시간이라도 아롱이를 찾으러 박물관 뒤에 가봐야 하나 망설였는데 바람이 얼마나 찬 지 집으로 뛰어 돌아오기도 벅찼다.
아롱이를 찾아 밥을 먹이고 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평소에는 정산소부터 들러 건사료와 물 그리고 캔을 챙겨놓고는 귀요미와 다롱이가 있는 갈대숲 쪽으로 움직인다. 마지막으로 사랑이 닮은 녀석과 아롱이를 찾는데 새해 첫날은 동선을 반대로 했다. 햇살은 좋아도 추워서인지 손이 곱아 캔을 따는 것도 힘들었다. 장갑을 잠시 벗기만 해도 손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겨울집에 덮어둔 비닐조차 뻣뻣했다. 귀요미와 다롱이 집에는 핫팩을 두 개씩 넣어주신다. 손을 넣어 먹거리 그릇을 꺼내는데 그날은 온기가 많지 않다. 추워서인지 낮에도 잘 나오지 않아 겨울집 안이 어느 정도 온기가 도는데...
다시 핫팩을 넣어주고 건사료와 여분의 캔을 따 넣어주는데 한기가 돌며 몸이 덜덜 떨렸었다. 아롱이를 찾고 밥을 먹여서인지 토성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지는 않았다.
신년 첫 번째 주일!
추위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모양이다.
예배 시간에 맞추려 서둘러 공원으로 나갔다. 박물관 정산소 앞에 가 보니 물은 얼음이 되어 있고 지난 밤 두고 가신 밥도 얼어 있다.
10월 말이면 공원 야외에 설치된 급수대들은 모두 잠근다. 동파 예방을 위한 조치다. 그릇을 닦을 곳이 마땅치 않다보니 일회용 용기들을 닦아 말려 가지고 나간다.
하지만 일머리가 깔끔하신 은토끼님은 세척한 그릇들을 챙겨놓으신다. 퇴근하시기 전에 늘 세척된 여분 그릇들을 정산소앞 겨울집에 챙겨두시는 마음 씀씀이를 내가 모르면 누가 알까?
정산소 옆은 불특정 다수의 냥이들이 드나든다. 거의 안면도 없는 냥이들이지만 물과 건사료와 캔을 넉넉히 챙겨놓고 귀요미 다롱이에게 갔다. 이름을 부르자 겨울집에 있던 두 녀석이 기어 나온다.
귀요미는 밥을 먹으며 살짝 큼큼거린다. 감기약을 사다 먹여야 하나 싶다.
아롱이와 귀요미는 올해 7살이 되었다. 공원에서 제법 잘 버티고 있긴 하다. 한동안 귀요미는 찾기도 힘들고 예민해서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었던 녀석이다. 요즘은 먹고 있는 밥그릇에 손을 대도 피하지 않는다. 적어도 자기를 해꼬지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확실히 아는 모양이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더니 시간 여유가 생겼다. 아롱이는 예배를 마치고 찾으러 갈 생각이었는데 박물관 옆을 지나가며 불렀더니 뒤에서 냐옹 소리가 난다. 얼른 잡목 속으로 데려가 밥상을 차려주며 보니 근처에 사랑이 닮은 녀석이 보였다.
녀석을 찾으러 다니는 시간을 줄여 반가웠다. 아롱이 주변에서 같이 밥을 먹이는데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 둘러보니 낯익은 치즈 냥이가 슬금슬금 다가와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아롱이와 귀요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밥을 다 먹고 물러설 때까지 지켜본다. 시간이 걸린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그 누군가에게 먹거리를 가로 채이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객식구들이 늘어나 여분의 캔을 더 쓰는 건 감당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내 식구 챙기기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잡목 숲이 춥지는 않아 아롱이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떨지는 않았다.
10시 20분. 밥그릇에서 비켜나는 아롱이를 보고서야 토성으로 서둘러 갔다. 눈만 뜨면 나와 기다리는 삼색이 녀석 때문이다. 안 나오는 날? 절대 없다.
하루 한 끼~.
인근에 물과 건사료 두시는 분이 여럿이다. 그런데도 녀석은 이 한 끼를 챙기려 눈만 뜨면 나와 칼바람 속에서도 악착같이 기다린다. 처음에는 닭가슴살 1개에서 점차 2개로 늘이다 캔까지 줘야 하는 과정이 나에게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부담되어서였다. 하지만 녀석은 툭하면 하악질을 하고 초화와 싸워대면서도 자리를 비키지 않고 버텼다. 녀석의 억척스러움에 지금은 아무리 춥거나 눈보라가 몰아쳐도 걱정이 되어 밥을 주러 집을 나선다. 어쩌다 이렇게 말려들었는지?
하늘은 놀랄 정도로 맑고 쾌청하다.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서인지 얼굴을 스치는 바람조차도 포근하다. 냥이들을 쉽게 만나 모두 밥을 먹여 놓고 교회를 가는 길이라 마음까지 산뜻했다. 새해 첫 주일 예배에서 축복을 넉넉히 챙겨 돌아올 거라는 믿음까지 생기는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