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날의 단상

by 권영순

영하 8도. 언제부턴가 겨울 추위도 여름 더위처럼 적당히가 없다. 여름이나 겨울이면 어디 지구 반대편에라도 가 있고 싶다. 형편만 된다면.

남편의 대동맥 재시술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복잡하고 수런거린다. 한 동안 가족 이야기인 <권가네 이야기>를 100권 정도 찍어 가족들이 나눠가지기 위해 작업을 했다. 남편은 인쇄소와 출판업을 한 사람이다. 책과 관련해서는 나보다 훨씬 아는 게 웃길 이다. 다행이다. 번듯한 출판사에서 출판을 하는 건 욕심이다. 서점 매대에 놓고 팔 생각도 없다. 처음 쓸 때부터 가족들의 기록을 가지는 의미가 더 컸다. 완성해 놓고도 차일피일하다 수정까지 마치니 더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원치 않는 암초를 수시로 만난다. 나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젊은이들의 모습이 부럽다. 건강에 대한 걱정이 있어서인 모양이다. 그들의 젊음에도 어려움과 고민이 분명 존재할 테지만 그 싱그러움이, 환한 웃음이 보기 좋으면서도 부럽다.

양쪽 어깨의 극심한 통증으로 한의원을 다니는데 어느 날 옆 침상 환자가 선생님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 나이 들면 안 아픈 데가 없이 다 아파요~.-

그 말에 공감하면서도 한 편으로 씁쓸했다. 60이 넘어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그동안 과(?)하게 쓴 온몸 여기저기에서 이상 신호가 발견된다. 게다가 어딘가 아프면 아픈 일에 대해 극도로 예민해지고 통증이 줄어드는 느낌이 생기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나쁜 상상력으로 뻗어간다. 갈수록 더 아프게 느끼는 건 덤이다. 이건 나만 느끼는 현상이 아닌 모양이다.


오전 10시 무렵! 아롱이와 귀요미 밥을 은토끼님이 먹이는 날도 집을 나서야 한다. 추우면 마음이 더 급해진다. 이즈음은 뭔 놈의 기온이 뻑하면 영하 10도다. 낮 기온도 영상으로 오르지 않는다. 작년만 해도 굳이 장갑을 챙기지 않았다. 견딜만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건지 요즈음은 장갑에 핫팩을 챙기지 않을 수 없다. 손가락이 금방 얼어붙어 캔을 따는 건 물론 닭가슴살 비닐 벗기기도 버겁다. 손가락의 말초 신경이 얼어 동상을 입을까 겁도 난다.

그런데도 매일 집을 나서는 이유는 삼색이 때문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눈만 뜨면 나와 있다.

토성 꼭대기에 매일 밥을 먹으러 나와 기다리는 삼색이

녀석이 나오는 곳은 토성 꼭대기에 가깝다. 바람이 평상시에도 거칠게 느껴지는 곳이다. 그 주변에서 밥그릇을 지키고 앉아 기다린다. 눈이 오면 나무토막에 올라가 앉아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자리다. 오직 하루 한 번 기껏해야 5분 정도 만나는 그 시간을 이 녀석만큼 칼같이 기다리는 게 가능한가?

눈이 내리니 나무 토막 위에 앉아 있다 내려온다
카트에 끌고 가시는 건 집에서 수선하신 고양이들 겨울집일 게 분명하다. 공원 해자길 주변에서 고양이 급식을 하는 분

여의치 않은 날은 9시 전에도 나간다. 못 만난다고 캔과 닭가슴살을 두고 올 수도 없다. 주변에 있는 다른 고양이들이 먹어서가 아니다. 까치들 때문이다.

고양이 급식소를 털어 먹고 있는 까치떼들

우리 어린 시절 까치는 분명 길조였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그러나 이즈음 내가 공원에서 마주하는 까치는 길조라기보다 영리함이 영악함으로 비칠 정도다. 급식소에 건사료를 놓고 돌아서기 무섭게 달려드는 데 인근 까치는 다 모여 순식간에 털어 먹는다. 남아나는 게 없다. 결국 은토끼님과 내가 낸 꾀는 고양이 집 안에 건사료와 습사료를 그릇 두 개로 나누어 넣어주는 것. 까치나 비둘기들에게 미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고양이들이 잠시만 밥그릇에서 벗어나도 순식간에 어디선가 날아든 까치에게 밥을 가로채여 어쩔 수 없다. 심지어 먹고 있는 밥그릇도 가로챈다. 순식간에 몰려드는 까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다.

고양이 캔값도 천정부지로 오르는 데 까치밥까지 챙길 여유는 없는 나 같은 사람은 결국 고양이가 배를 어느 정도 채울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 시간이 걸리는 건 문제가 아니다. 너무 춥다는 거다. 심지어 발도 손도 시리다. 너무 추우니 입을 옷을 고르지도 못한다. 고양이 집에 팔을 뻗어 핫팩도 여분 먹이도 넣다 보니 먼지나 티끌이 묻어도 표시가 안 나는 옷을 매일 입게 된다. 색상이 환한 옷을 입을 수도 없다.


다롱이는 요즘도 친한 척이 장난 아니다. 갈 때마다 바지에 자신의 몸을 비벼댄다. 그걸 까미는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냄새를 확인한다.

공원 출신 냥이 답게 까미는 조릿대 놀잇감을 더 좋아한다.
다롱이. 밥을 주러 가면 내 주변을 맴돈다
귀요미. 나란히 놓인 두 집을 왔다갔다 하며 겨울을 나고 있다. 물은 항상 꽝꽝 얼어 있다

사랑이 닮은 녀석은 집 하나를 차지해 정착했다. 하긴 밥 주고 매일 핫팩을 두 개씩 넣어주는 데 어디 다른 데 가고 싶을 리가?

아롱이만 아무리 집을 만들어주고 들어가라고 애원하다시피 해도 들어가지 않는다. 귀요미 옆에 붙어 지내면 얼마나 안심이 될까 싶지만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고양이 세계도 사람 살이 만큼 쉽지 않은 이유가 있을 터.


토성에서 기다리는 삼색이 녀석에게 한 끼(추운 날은 캔에 닭가슴살을 세 개씩 준다)와 닭가슴살을 목표로 나오는 녀석들까지 해결하고 한의원 치료까지 마치고 돌아와 남편과 점심을 한다. 남편의 참새방앗간은 을지로 3가에 있다. 오래된 지인들과 바둑도 두고 시간도 보낸다. 지인들만큼 오래된 기원은 낡은 건물이지만 춥지는 않단다. 다행히 가리지 않고 잘 먹어 대동맥 재시술에 체력 문제는 없을 거라 믿지만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한 건 어쩔 수 없다. 이것도 인지 상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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