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에 생긴 일

by 권영순

지난겨울.

그렇게 추웠다.

아침 기온이 툭하면 영하 10도. 공원 냥이들 먹거리에 물을 챙겨 나갈 때마다 공원의 칼바람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러나, 그 칼바람 속에 하루 한 끼를 기다리는 녀석들 얼굴이 떠오르면 그냥 나서게 된다. 패딩 주머니마다 핫팩을 넣고 거기에 냥이들 캔을 두어 개씩 집어넣으면 그렇지 않아도 빵빵한 패딩의 꼴이 더 우스워 보여도 그냥 무시한다.

매일 고양이 밥을 주시러 오시는 분들은 그냥도 알아볼 수 있다. 두터운 패딩에 얼굴을 감싸는 마스크를 해 처음에는 누군지 정확하게 알아보기 힘들지만 냥이들을 챙기는 분들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고양이 겨울집을 챙기다 보니 색깔이 어둡고 이물질이 묻어도 별로 티 나지 않는 옷을 입고 계시지만 행동의 온기마저 가리지는 못한다. 겨우 건네는 인사가 건강 더 조심하시라는 말 뿐이지만 나도 모르게 격려와 기원을 담아 건네게 된다.


은토끼님은 명절 연휴로 쉬신다. 겨우 내 냥이들 먹일 캔과 물이 꽝꽝 얼어붙어 고생을 많이 하셨다. 다행히 이번 명절 연휴엔 추위가 한풀 꺾인 느낌이 들었다. 명절 연휴라 공원엔 사람들이 넘친다.


은토끼님과 내가 교대로 밥을 먹이는 공원 냥이들은 박물관과 조각 공원 사이에서 찾는다. 어디서 밤을 보내는지 알 수 없는 아롱이도 겨우내 박물관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설날. 날이 비교적 따뜻하다고 패딩을 벗고 가벼운 겉옷을 걸쳐 입고 나섰다. 꽃눈들도 물이 오르며 조금씩 고개를 내미는 느낌이 다 들었는데.... 바람이 만만치 않게 불어 옷차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더구나 명절이라고 박물관에는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사물놀이단의 공연에 전통 놀이들이 준비되어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왕래했다. 박물관 앞 넓은 조각공원에는 연을 날리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연 날리기에 딱 알맞은 바람까지 제대로 불고 있었다고나 할까?


자리에 있는 다롱이와 귀요미 밥을 먹이고 아롱이를 찾으러 움직였다. 사물놀이의 장구와 징 소리가 우렁차다 못해 크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롱이와 사랑이 닮은 녀석을 얼른 찾아 밥만 먹이면 집에 가야지 싶었다. 바람이 불어도 야외에서 활동하기에 크게 춥지 않은 탓에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원 곳곳에 머물러 있었다. 심지어 바람이 덜 드는 곳 벤치에는 누워서 햇볕을 즐기기까지.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아롱이가 나오지 않았다. 박물관 뒤나 조릿대 숲 쪽에서 늘 나왔던 터라 그곳을 오가며 불러도 소용없었다. 연구소 주변에서 쉽게 찾았던 사랑이 닮은 얼룩무늬 녀석도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고양이 둘을 찾아 바람을 쏘이며 계속 걸어 다녔더니 나도 모르게 진이 빠졌다. 설날에 밥을 굶길 수도 없고.


아롱이는 명절 바로 전에 오른쪽 앞다리를 절룩거렸다. 주변 고양이들과 다툰 상처라기보다는 어디선가 접질린 느낌이었다. 은토끼님과 걱정을 하면서도 아롱이를 포획하기 어려운 데다 연휴라 어쩌지 하며 걱정만 하던 터였다.

간신히 찾아 밥을 먹였더니 맥문동 덤불에 드러눕는 아롱이

게다가 나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남편이 입원했다 퇴원했다. 경험한 사람들은 안다. 이 한 문장 안에 얼마나 많은 일이 내포되어 있는지. 희망과 낙담이 어떻게 교차하는지. 정신적 피로가 육체적 피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은토끼님이 병원 생활을 1년 이상했다고 하셨다. 흘려듣기에는 그 긴 시간이 너무 아찔하게 느껴졌었다. 그 시간을 견뎌 보셔서 공원 고양이들에게 그렇게 마음을 쓰시는 건가? 싶기도 했다.


나이 들어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거야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그 어떤 병을 진단받은 이후 치료 과정에서 3개월 후에 오라거나 6개월 후에 오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정신도 오락가락할 수도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3개월과 6개월의 차이가 그렇게 아득한 시간차라는 걸 말이다.

혼자 움직일 수 있는데 모르는 여자와 있고 싶지 않다는 남편의 단호함에 간병인 구하기를 포기하고 직접 간병에 나선 탓에 아들 둘의 도움에도 나는 파김치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평소라면 어느 하루 바람 좀 쏘인다고 기진맥진할 정도는 아니었다. 남편은 평소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 아니다. 하지만 나이 들어 건강 문제가 터지면서 힘이 든 모양이었다. 퇴원해 집에 돌아와서도 힘들어했다. 잘 먹는 거 하나만으로도 너끈히 버티던 사람이라서인지 먹지를 못하니 내 신경도 날이 서 있는 상태였다.


아롱이는 누가 뭐래도 이제 집냥이 6년 차가 되어 가는 까미 엄마다. 집냥이 4년 차 되어가는 나리의 엄마면서. 아롱이 새끼들은 은토끼님과 내가 입양해 모두 집에서 지내는데 그 엄마만은 공원에 남아 추운 겨울을 몇 년째 나고 있으니 마음이 쓰이지 않을 리 없다. 은토끼님도 마찬가지지만 둘은 아롱이 먹거리에 더 신경을 쓴다.

밥을 먹고 있는 아롱이

박물관 주변을 돌다 보니 만 보가 넘어갔다. 이제 포기하고 점심 먹고 다시 와야지 하는데 어디선가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의 반가움이란~.

명절 직전 은토끼님이 보내준 사진

온갖 나쁜 상상력 때문에 지쳐 있다 나도 모르게 화색이 돌았던 모양이다. 근처에 쉬고 있던 사람들이 쳐다보고 박물관 경비초소에서 근무하시던 분이 다 나와 보셨다. 근처를 빙빙 돌며 아롱이를 부르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경비 초소에 근무하시는 분은 이해심 가득한 데다 다행이라는 표정까지 덤으로 얹어 미소를 보여주신다. 나도 모르게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는 마음을 담아 고개를 꾸뻑겨렸다.

아롱이는 앞다리를 절면서도 다리 사이를 오간다.

까미는 집 안에서도 춥다고 이불까지 끌어다 덮어주는 데 제 엄마는 이게 뭔지? 밥을 먹이며 아롱이에게 계속 집에 들어가 자라며 하소연을 했다.

"아롱아~ 제발 집에 들어가 자. 거긴 핫팩 넣어 따뜻하잖아. 네가 집에 들어가 자면 은토끼님이랑 나랑 얼마나 마음이 놓이겠니?"

사랑이를 닮은 이 녀석은 공원 조형물 아래 숨어 있다 나온다.

먹거리를 조금 먹더니 햇살이 환한 맥문동 덤불에 눕는 녀석을 지켜보다 돌아섰다. 내일은 제발 쉽게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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