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날에

by 권영순

전날 저녁부터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밤을 지새우며 내리더니 다음 날도 종일 쉬지 않았다. 땅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존재들을 흠뻑 적셔 깨울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드는 비였다.


비는 쉽게 멈출 것 같지 않았다. 토성에서 한 끼를 기다릴 녀석이 신경 쓰여 아침을 먹자마자 서둘러 집을 나섰다. 바람이 제법 쌀쌀하게 느껴지는 공원 자작나무 주변을 지나가는 데 마른 가지에 연한 초록 몽오리가 슬그머니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게 보였다. 며칠 전부터 토성에서 바라보이는 해자 길 늘어선 수양버들이 녹색으로 보이던 게 환각이 아닌 모양이다.

이 시기 나뭇가지 여기저기 살짝살짝 엿보이는 연초록이 별날 정도로 반갑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느낌인가?


토성을 올라가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넌 어떻게 하루도 안 빠지고 나오냐? 나한테 닭가슴살이랑 캔을 맡겨 둔 것도 아니면서???"

이런 헛소리를 해봐야 소용이 없다. 토성 삼색이 녀석은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신경이 쓰여 불편한 마음으로 집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나가 밥을 주는 게 편하니 어쩔 수 없다.


집을 나설 때의 까미 표정도 떠올랐다.

비가 내리는 날은 기분이 축 처지는 모양이다. 표정이 새초롬하다. 나도 모르게 까미 눈치를 봤다.

KakaoTalk_20260302_203404400_02.jpg 까미. 남편은 조금만 쌀쌀하다 싶으면 이불까지 덮어준다.

남편의 병원 입원이 길어졌던 탓에 며칠 집을 거의 비워야 했다. 퇴원하고도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 까미는 외출한 사람이 밤새 돌아오지 않을까 이런 감시 눈길을 보낸다. 외출 준비를 하면서도 공원에 갔다 바로 돌아온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으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앞발을 저는 아롱이가 떠올라서다. 비가 오면 사람도 을씨년스러운데. 제발 따뜻한 집(은토끼님이 조릿대 숲 에 숨겨 놓고 거기에 밥을 주신다)에 들어가 춥지 않게 지내야 할 텐데...

공원에 사는 고양이의 마음을 내 생각과 판단에 맞출 수는 없지만 비도 오니 집에 들어가 따뜻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공원을 가득 채우는 건 비뿐만이 아니다. 바람도 제법 불어 지난가을 낙엽으로 털어낸 빈 가지가 사방으로 팔랑거린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가 연약해 보였다.

아주 춥지는 않아서인지 비바람이 불어도 개를 데리고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띈다. 평소 이 시간이면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는데 비가 와서인지 아무도 없다. 제법 선득거려 서둘러 초화 지를 향했다. 아직 꽃몽우리가 여물지 않았지만 곧 벚꽃과 개나리 게다가 복숭아꽃도 화사하게 공원을 채울 것이다.

KakaoTalk_20260302_210205824.jpg 작년 공원 토성길에 피었던 복숭아꽃. 고향의 봄을 연상시킨다

사방에 봄꽃들이 피어나는 걸 기다리는 마음으로 질척거리는 초화지를 지나 토성길로 올라갔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도 변함없이 기다리던 녀석이라 신경이 쓰여 평소보다 한 시간은 일찍 서둘렀다. 바람이 불어 겉옷에 빗방울이 날아들어 옷을 적신다. 작은 우산을 쓴 탓인지 빗방울에 적셔지는 범위가 제법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에도 나와 있을 녀석이 안쓰러워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KakaoTalk_20260302_203404400_01.jpg 나무 둥치에서 비를 피하다 밥을 먹으러 나오는 삼색이

나는 녀석이 어디에서 머물다 나오는지 모른다. 겨울집을 따로 마련해 주지도 않았다. 혹여 만나지 못해도 먹이를 두고 오지 않는다. 공원 고양이들에게 먹거리를 주기는 하지만 공원 곳곳 사람들 눈에 잘 뜨이는 겨울집을 보며 잘하는 일이라고 응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는 고양이들을 위해 겨울집의 설치도 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람과 동물의 공존을 위해서도. 모든 사람이 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고양이를 좋아하라고 권하는 것도 억지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와 있을까? 비 오는 날이라 해가 나오지 않았어도 배꼽시계는 정확하지 않나?

평소 한 끼 밥을 은밀히(?) 교환하던 장소에 삼색이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빨리 왔나? 두리번거리다 나무 둥치 아래 웅크리고 있다 일어서서 자기 존재를 알리는 녀석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어이구~' 소리가 나왔다. 그놈의 밥이 뭔지? 사람이나 짐승이나 먹고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겠지만 찬비를 맞으며 밥 주러 오는 사람을 기다렸을 그 절박함에 안쓰럽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이 없을 때 밥그릇을 채워 놓고 올 수 없는 것은 이유가 있다. 먹고 있는 밥그릇조차 덤벼들어 가로채는 까치들이 가장 문제다. 숫자가 워낙 많은 데다 밥 주는 사람의 기척을 먼저 알아채고 나뭇가지에 앉아 호시탐탐 노린다. 건사료라도 두고 돌아설라치면 어디서 그렇게 많은 까치들이 순식간에 모여드는지. 더구나 삼색이에게 주는 닭가슴살과 캔은 까치들이 좋아하는 먹이인지 사람이 조금만 비켜나도 고양이와 싸울 기세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날 오후. 나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꽃시장까지 다녀와 장미 다발을 건네는 젊고 예쁜 선생님을 만났다. 사람보다 장미가 더 반가운 건 아니지만 선물은커녕 생일에도 꽃 한 송이 건네지 않는 덤덤한 남편과 40년을 살고 있는 내 입장에서 꽃 선물을 해 주시는 선생님의 마음 씀은 그저 고맙기만 하다. 아니 그런 분을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집에 와 작은 컵에 담가 글도 쓰고 책도 읽고 밥도 먹는 식탁에 꽂아 놓았더니 까미가 다가와 검수를 한다. 까만 고양이가 장미 냄새를 맡는 광경에 나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KakaoTalk_20260302_213932305.jpg 식탁에 뛰어올라 장미 향을 검사하는 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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