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
내면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2월에 남편은 대동맥 스턴트 재시술을 했었다. 하지만 시티 결과 실핏줄이 아직 새고 있다며 다시 시술을 해야 한단다. 우리나라에서 제일이라는 대형병원에서 그런 문제가 일어날 수 있나?
그 말을 듣는 순간은 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개복 수술이라는 최악의 결과는 아니라며 다행이라고 다독였지만 공포가 저 내면 아래에서 슬금슬금 올라왔다. 사람의 몸은 기계가 아니다. 시술 후 변수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타격을 느끼지 않는 것도 불가능했다.
나는 긴 시간 중학생들을 가르치며 교단에 섰다. 당연히 스스로도 강단이 보통은 넘는다고 평가해 왔다. 하지만 공황장애를 한 번 겪으면서 불안이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깨달았다.
그날 밤.
시작은 목에서 왔다. 남편의 퇴원 일이 이틀 더 연장되면서 그 무섭다는 병인 간병이 남긴 후유증이 몸속 면역력 부족으로 남아 있을 터였다. 게다가 미뤄두기만 했던 일도 마무리했다.
큰아들의 혼사가 있는 날 가족들에게 책으로 묶은 <권가네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기 때문이다. 큰 아들은 결혼식 행사 중 대부분을 생략하고 피로연으로 양가 소개를 대신하자고 했다. 초스몰 웨딩이라도 번잡한 일 대부분이 다 생략된 것은 아니었다. 간병 더하기 집안 행사가 더해졌으니 분명 무리수가 생겼을 수 있다.
결국 감기와 몸살 기운이 심각해져 이비인후과를 갔을 때였다. 그 이비인후과는 똑딱 앱으로 진료를 신청해야 한다. 70대 정도인 남자분이 앱 설치를 하지 못해 어떻게 하냐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도와주고 싶어도 앱을 설치할 때 필요한 비번들을 모르셔서 여럿이 도와드리려 나섰다 포기했다. 결국 집에 가서 아드님에게 설치해 달라고 조언했다.
그분은 씁쓸해하시면서
"우리 어렸을 때는 부모님에게 뭔가를 다 배웠는데 요즘은 거꾸로 애들에게 배워야 하네요."
너무 이해되는 말이었다. 그런 순간이 내게도 수시로 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도 무언가를 배우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매일 새로운 게 나왔고 채 익히지도 않은 것 같은데 다음 버전이 나왔기에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 같이 빠른 변화 앞에서 그분처럼 황당할 정도의 일이 앞으로 얼마나 많이 생기겠는가?
키오스크 도입이 됐을 때는 버벅거리는 탓에 뒷사람이 얼마나 신경 쓰였는지 모른다. 때로 나도 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는 게 쉽지 않구나 싶다. 기계의 발전이 장난 아닌 속도로 변화하는데.
남편의 시술에도 최첨단 장비들이 투입되었을 텐데. 어디를 놓쳤기에 다시 시술을 해야 하는 일이 생겼을까?
병원을 다녀온 뒤에도 며칠 밤을 지독할 정도로 아팠다. 약을 먹어도 몸 여기저기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심하게 맞은 것처럼 목과 어깨 팔의 통증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내 심리적 마지노선도 점차 후퇴하는 게 분명한 모양이다.
체력이 쉽게 회복되지 않는 두어 주를 보내면서도 공원 행은 거르지 않았다. 올해 7살이 되는 까미 엄마 아롱이의 삶도 사람의 노년처럼 고단하고 힘들 터다. 다행히 절룸거리며 다니던 아롱이는 눈에 띄게 잘 걷고 박물관 뒤 계단도 잘 오르내린다. 약을 먹이고 연고를 매일 두 번씩 발라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