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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Jan 25. 2022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치우면 생기는 일들

지난 4년간의 변화

  아이는 tv에 집착했다. 잘 먹지도, 자지도 않고, 예민했던 큰애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3살까지는 기관에 보내고 싶지 않아서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육아만 했던 때. 6시부터 일어나서 하루 종일 쉬지 않고 탐색하는 아이의 육아가 육체적으로 버거워 잠시 틀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tv만 틀어놓으면 세상 편안하고 조용했다. 그동안 나는 쪽잠을 잤다. 어느새 아이도 나도 그것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 어느 놀이보다 자극적인 화면에 빠졌고 나는 편안함에 중독되어 둘 다 tv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사실 tv를 더 사랑했던 것은 엄마인 나였다.   


  텔레비전을 보더라도 하루 종일 켜 두는 것은 아니었으니 산으로 들판으로 나가거나 집에서 책을 보는 시간도 많았다. 4세 때 어린이집에 가고 난 후부터는 하원 후에 놀이터에서 좀 놀고 집에 와서 티브이를 보고 나면 책을 볼 시간이 충분치가 않았다.  유치원에 가고 나서는 더 심했다. 꼭 밖에서 놀아야 했던 아이라서 놀고 티브이 보고 저녁 먹으면 하루가 다 갔다.


  나이가 들면서 뽀로로에서 만족되지가 않는지 로봇이 나오고 때려 부수는 것들이 나오는 만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일본 만화들 위주로만 보게 되는 시기도 있었다. 어느 날 6세 되던 무렵, 자기 전에 아이가

"엄마, 나 tv 속에 들어가고 싶어."라고 했다. 이대로는 정말 안 되겠다 싶었다. 그 무렵 읽었던 육아서에서 거실에 티브이를 치우면 책 읽는 아이가 된다는 말에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티브이를 작은 방으로 치워버렸다.      


  그것은 정말 큰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우선 나부터 티브이 없이 살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돼야 했다. 남편은 더했다. 평생을  함께 살아서인지 티브이 없는 거실이 낯설기만 했지만, 아이가 더는 찾지 않았다. 대신 눈앞에 있는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책을 사랑하는 아이가 되었다. 엄마표 영어를 시작하면서 영상 노출도 필요한 때가 되었다기에 7세 때  영상을 보긴 보되 영어로만 볼 수 있고 한 시간 이내로만 보기로 규칙을 정했다. 다행히 아이는 잘 따라와 주었다.  작은 방에서 소파가 아닌 의자에 앉아 있으면 오래 보고 싶어도 힘들다.  tv가 고장이 나서 영어방송 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주말에 할머니 집에 가서 티브이를 보게 되면 보고 싶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두었다. 지금은 학교 숙제를 하고 수학 문제집 3장을 풀고 영어 챕터북을 20분 정도 읽고 난 후, 한 시간 동안 영어로 넷플릭스를 시청하고 나면 본인이 알아서 끈다.


  

다독상

  올해 큰애는 10살이 되었다. 지난 4년간 티브이를 없애고 책장을 두었더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책을 엄청 많이 읽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물론 태권도 빼고 학원을 다니지 않으니 놀이터에서 놀기도 엄청 논다.) 그건 우리 가족 모두 마찬가지다. 심지어 작년에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다독상을 받기도 했다.


  주변에서 책을 가까이하는 10살 남자아이는 드물다.  티브이를 치우고 책장만 두었을 뿐인데 언제 어디서고 책을 읽는 아이가 되어 엄마들의 부러움을 받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책을 꺼내 보고, 머리를 말리면서도 책을 본다. 도서관에서도 혼자 2시간 이상 앉아서 책을 본다. 도서관 대여 권수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도서관 한 군데서 책을 빌리는 것으로 성에 차지 않아 할머니 집에 갈 때도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가자고 한다. 아파트에 작은 도서관이 생겼을 때 아이 친구들과 엄마들과 간 적이 있었다. 뛰놀고 장난치던 아이가 스위치 켠 것처럼 책에 폭풍 몰입하는 모습을 보고서 놀라워했다. 집에 손님들이 오고 정신없이 노는 와중에도 폭풍의 눈처럼 책을 보고 있는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집에서 어떤 학습도 시키지 않았는대도 유치원 수업만으로 한글을 다 떼고 학교에서 하는 국어 단원평가 시험도 거의 100점을 받아온다. 1학년, 2학년 담임 선생님들 모두 아이가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다고 하셨다.       

  

  나는 책 육아를 미친 듯이 하는 사람은 아니다. 아이가 잠도 자지 않고 놀지도 않고 책만 읽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친구들이 물려주는 책들, 당근 마켓에서 나오는 아주 저렴한 책들을 들였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는 한글책도 읽지만 영어책도 많이 읽는 바람에 영어 챕터북들도 구매해주었다. ( 그림이 거의 없고 글밥이 많은 영어 챕터북을 읽는다는 것은 한글 책 독서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 시간이 나면 도서관에 손잡고 간다.  도서관에 가면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게 둔다. 그래서 학습만화책이나 전천당 같은 책도 읽는다. 도서관과 친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만화책만 읽어도 그대로 두었다. 지금 아이는 한글 해리포터 책도 읽는 반면 학습만화책도 읽는다.       


  독후 활동도 알아서 한다. 예를 들면 동계올림픽에 관련된 책을 읽고 나면 시키지 않았는대도 집에 있는 여러 물건들로 동계올림픽 관련 스포츠를 만들어서 직접 해본다. 해리포터를 읽고 나면 마법 지팡이들과 마법학교의 마법 아이템들을 종류별로 그리고 만든다. 책에 몰입하고 나면 꼭 몸소 실천해서 흔적을 남기는 아이를 보면서 참 신기했다. 최근엔 dogman이라는 영어 챕터북을 보고 스스로 영어만화를 그렸다. 지금 나의 고민은 초3이 되는 시기에 그동안의 창작 독후 활동을 글 쓰는 독후활동으로 전환시키는 일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남자아이들은 없을 것이다. 일기를 대충 쓰는 버릇이 있어서 최근 옆에서 같이 얘기하고 생각하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독후감을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서다. 사고의 날을 다듬을 수 있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글쓰기를 잘했으면 하는 기대에서다. 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해주지 않으니 이렇게 해서라도 하는 수밖에.           


  tv를 거실에서 치웠을 뿐인데 지난 4년 동안 정말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엄마인 내가 핸드폰을 만지고 있으면 안 되었기에 아이와 같이 책을 읽었다. 예전엔 육아서만 종종 봤다면 지난 4년 동안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독을 하고 이제는 글도 쓰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지난 코로나 2년 동안 밖으로 나다니지 못해도 토지, 태백산맥과 같은 대하소설들을 읽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해방감을 맞보았다. 재테크 책을 보고 투자에도 나름 성공했고, 엄마표 영어 책을 보고 게으르지만 엄마표 영어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채식과 건강에 관한 책을 읽고 자연식물식을 하는 사람이 되었고 건강을 되찾았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서 나아가  공부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었다. 독서는 인생에서 절실했던 것들에 대한 해답을 주고 꿈을 꾸게 해 주었다. 이제 독서 5년 차가 되어보니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의 기로에서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했던 것들이 바로 책이 아니었다 하는 생각이 든다.


  육아는 정말 심각하게 자기 혁신을 필요로 하는 분야다. 특히 나쁜 습관들로 평생을 살아온 나 같은 엄마로서는. 아무리 자기 계발서를 읽고 강의를 듣고 새해 다짐을 하고 작심을 해도 안되던 것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텔레비전 중독은 아이의 문제라기보다는 내 문제였다. 의지박약에다 본능에 약한 나로서는 환경을 바꾸는 것 빼고는 답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책을 읽고 싶다면 텔레비전을 치우는 것이 가장 정확한 답이다. 생각대로 아이를 키우고 싶다면 고통스럽긴 하지만 아이의 환경인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아이들은 듣는 대로 크지 않는다. 보는 대로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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