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쯤 프랑스 파리에 있는 로댕 미술관에 간 적이 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유명한 ‘지옥의 문’ 앞에 섰다. 잠시 후 뒤에서 두 프랑스인 남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뒤로 빠져서 그 두 젊은 프랑스인 남성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작품에 시선을 고정한 채, 때때로 손으로 가리키기도 하면서 얘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토론이 분명해 보였다. 미술관에 혼자 또는 남자들끼리 가는 경우를 그 당시엔 내 주위에서 잘 볼 수 없었고 한 작품 앞에서 오래도록 토론을 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미술관의 남성 관람객들이 참 신선하게 느껴졌다. 지구 반대편 내가 사는 곳에는 피시방 가서 게임하는 남자는 많아도 미술관에 자발적으로 가거나 책 읽는 남성은 드물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술관보다 피시방이 더 많으니까. 환경은 정말 무섭다.
예술과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모든 예술은 약하고, 상처받고, 힘없는 것들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12년이 지나 두 아들의 엄마가 된 지금, 나는 나의 아들들이 타인에게 공감할 줄 알고, 세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집에서 편하게 배달 음식을 먹더라도 눈 오고 비올 때도 음식을 배달해주시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우리 아파트에 살지 않는 아이들이라며 놀이터에서 나가라고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여자 친구가 이별통보를 한다고 해서 그 여성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정말로 정말로 아니었으면 좋겠다.그런데 어려서부터 스마트 폰을 가지게 되면 그런 인간상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사주는 부모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우리 애만 없으면 왕따 당할까 봐, 키즈 전용 요금제를 하면 앱 설치, 게임 사용 시간 등등을 부모가 조절할 수 있어서 괜찮다, 이 아이들은 스마트폰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하게 해 주어 조절 능력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
한번 차근차근 짚고 넘어가 보자.
* 왕따에 대한 두려움
10년 넘게 영어강사였던 내 경험상 왕따가 되는 것은 스마트폰이 없어서라기보다다른 아이들과 놀이를 하거나 이야기를 할 때 코드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경우인 것 같다. 스마트 폰이 없어도 친구를 좋아하거나, 특기가 있고, 활발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면 초등학교 생활에 있어서 (특히 저학년) 왕따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마트 폰이 없어도 반장, 회장까지 하는 친구들의 예시도 있다.
*스마트폰 제한 장치
제한 암호를 풀고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을 찾아 정한 시간보다 게임을 더 하고 있지만 부모님께 얘기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실제로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조절 능력(현재 주위 아들들의 예시)
우리 옆 동에 사는 한 형제는 막내가 3학년이 되면서 둘 다 스마트 폰을 들고 학원을 돌기 시작했다. 하원 길에 엄마의 눈이 안 닿는 아파트 어딘가에서 항상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는 형제들을 본다. 집에 가서 하는 게 어떠냐고 해도 안 들리는 것 같았다. 추운 겨울날지하 주차장 난간에 나란히 앉아 게임하는 1학년, 2학년 남자아이들도 본 적이 있다. 아들 친구 중 한 명은 엄마 눈을 피해서 게임을 더하고 싶어 우리 집에 오고 싶다고 했다. 집에 찾아와서는 와이파이 비번을 가르쳐 달라고 했고 나는 기계치라서 잘 모르겠다며 웃었더니 발을 동동 구르며 왜 그걸 모르냐고 난리를 쳤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오줌을 누고 물도 안 내리고 손도 안 씻고서는 작은 방에 티브이와 연결된 닌텐도를 잡더니 정신없이 게임을 하고 집에 갈 시간이 되어도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몇 번을 가자고 한 끝에 겨우 일어나서는 인사도 없이 휑하니 나가버렸다. 스마트폰을 갖게 되는 순간 조절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이 아이는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이렇진 않았다. 축구를 잘하고, 씩씩한 데다, 똘똘했는데 학원을 다니며 스마트 폰을 가지게 된 이후로 찾아온 틱 증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예의도 없어졌다. 아이 엄마는 갈수록 게임시간 조절이 잘 안 되는 것, 틱이 돈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나아지지 않는 것을 걱정하면서도 다른 아이들이 게임할 때 옆에서 한 번만 해보자고 사정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욱 싫다며 다른 애들 다 있는데 그래도 있어야 되지 않겠냐고 했다. 뭐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고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살고 있는 엄마들이 무방비인 상태로 아이들과 그냥 내동댕이 쳐진 듯 한 느낌이다. 어느 전문가는 제한하는 것이 좋다고 하고 어느 전문가는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하는 게 좋다고 하고, 하긴 하되 규칙을 세워서 하도록 하라고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 아이들 천지다.
정작 IT업계 사람들은 본인들의 자식들에게 15,16살이 될 때까지 스마트 폰을 주지 않는다고들 한다. 빌 게이츠도 스티브 잡스도 그랬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신인 그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스마트폰을 제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조절이 어렵다는 점, 그리고 SNS 과몰입이 아이들에게 우울증과 자살충동증을 야기시킬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아무리 봐도 좋은 점보다는 안 좋은 점이 훨씬 더 많다. 스마트폰 게임에 이토록 빠지는 이유는아이들에게 현재 게임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없거나 다른 재미있는 것들을 경험해볼 기회가 없어서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가 스마트폰이 없는 대신 다음과 같이 흥미를 느낄 수 있을 만한 것들로 환경을 만들어나가려 노력했다.
1. 종이접기 책과 색종이를 사주고 같이 접는다.
2. 과학실험 혹은 만들기 키트를 주기적으로 사준다.
3. 책을 같이 읽는다.하루 종일 만화책만 읽어도 내버려 둔다.
4. 피아노를 배우게 해서 아이 레벨에서 칠 수 있도록 유명한 곡의 쉬운 버전 악보를 검색해서 프린트해주고칠 때마다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5. 폰 게임 외에 해보고 싶다고 하는 것은 바로바로 할 수 있게 해 준다.
(롱보드타기, 보드게임하기)
6.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만들면 격려해주고 냉장고에 작품을 붙여준다.
7. 같이 배드민턴을 친다. (2살 동생을 유모차에 태워놓고 배드민턴을 쳤다.)
8. 놀이터에서 가능하면 많이 놀게 하기 위해서 이사 온 직후였던 1학년 때 둘째를 데리고 매일매일 나갔다. 매일 놀이터에 가야 같이 놀 수 있는 멤버가 생긴다.
9. 주말에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공원에 간다. 계절마다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간다.
10. 차에서 자주 들었던 팝송을 블루투스 마이크를 이용해서 가사를 보며 따라 부르거나 노래에 맞춰 춤는 시간을 가진다.
11.주말에 닌텐도 게임을 부모 중 한 명과 같이 한시간동안 한다. tv와 연결시켜 큰 화면을 보고 한다.
피곤하고 힘들긴 하다. 그래도 아이는 친구들과 뛰놀 줄 알고, 그림 없는 두꺼운 책을 시키지 않아도 꺼내 읽고, ‘이웃집 토토로’ 주제곡도 피아노로 칠 줄 알게 되어 기뻐했다. 종이접기를 해서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부를 줄 아는 팝송이 있고, 엄마나 아빠와 닌텐도 게임을 할 시간을 기다린다. 아이를 지금의 상태로 만들기까지 1학년과 2학년 동안 많이 고민하고 노력했다.나쁜 습관은 삽시간에 들러붙는 반면 좋은 습관 하나 가지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심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위기는 매 순간 오겠지만 아이와 딜을 하더라도 조절 능력이 생기는 시점이 되기 전에는 치밀하게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을 확실히 해줘야만 한다.스마트폰 게임 말고도 좋아하는 것과 재미있는 것들을 더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신체활동을 더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지칠 때까지 친구들과 뛰어놀고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세상을 들여다보고 자기 앞에 있는 사람들을 느끼고 무엇으로부터도 배울 수 사람, 인문학적 교양이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대한 스마트폰 사용 시점을 늦추고 싶다. 적어도 초등 기간까지는 스마트폰으로부터 아이를 지켜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