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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Dec 19. 2022

중년이 되어도 가치있는 나


  <나 혼자 산다>에서 ‘천정명’ 편을 보았다. 좋아하는 운동을 10년 넘게 해서 고단자의 위치에 있었다. 구두를 너무 좋아하여 구두 손질 도구를 전문적으로 갖춰 직접 구두를 손질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탁 트인 옥상에서 좋아하는 요리와 함께 바비큐도 하며 즐겁게 식사를 한다. 혼자 사는 다양한 사람들 중에서도 부유하건 아니건 간에 특히 혼자 즐기며 잘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안다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며 제대로 잘하기 위한 시간을 보낸다. 한 끼 식사를 하더라도 정성껏 제대로 차려 먹는다.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그 결이 달라지기도 하겠지만 부유하다고 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자기답게 즐기는 것은 아니었다. 원룸에 살더라도 제대로 자기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혼자 너무 재밌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결혼은 생각조차 나지 않겠다 싶었다. 여유로운 1인분의 삶이 가볍고 자유로워 보였다.


  누가 시킨것도 아니고 좋아서 이렇게 살고 있으면서도 사방에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혼자 덫에 걸려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감당해야 하는 4인분의 고단함에 내가 좋아하는 것,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과 같은 것들과는 상관없이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이런 생활도 어언 10년 차. 올해 그 정점을 찍은 것만 같았다. 그런 때에 나혼산에 나와 자기만의 시간을 풍요롭게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미혼 시절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혼자 씨름하고 연구하며 즐겼던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본다.


  그때 나는 충분히 자신을 위해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삶의 페이스에 뒤쳐질까 불안해하며 이래도 되는 건지 괜찮은 건지 걱정하며 보냈던 시간이 더 많았다. 그리고 결혼, 출산, 육아라는 엄청난 경험들을 하며 쓰나미와 같이 들이닥쳐오는 시간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적당히 타협하는 법만을 부지런히 익혀왔다. 엄마라는 경험을 살면서 한 번쯤 해보고 싶었지만 이렇게  자아가 그 시간 속에 묻혀 휩쓸려가 흔적도 없을 정도가 될 줄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마스다 미리의 말처럼 죽을 때 묘비에 ‘엄마’라고 쓸 것도 아니고 나는 나인데 말이다.


   항상 이것만 끝나면 좋은 시간이 올 거라고 그때그때 버거운 시간을 버텨냈다. 10대 때 수험 생활만 끝나면 좋은 시간이 올 거라고 세뇌되었던 것처럼, 취직만 되면, 결혼만 하면,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다 키우고 나면, 내 집 마련을 하고 나면, 대출을 다 갚으면, 아이들이 독립하면... 그때까 내 즐거움은 당연히 유보되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해왔다. 물론 사람이 어느 정도 목표를 이루고 성취를 하기까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노력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 시기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근 10년간의 전력질주 끝에 더이상 가다가는 착실한 엄마고 뭐고간에 나도 좀 살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양철 회장님의 말이 생각난다."나중에? 백날 살아봐라. 나중이 있는가." 나중은 없다. 나를 알아가기 위한 노력은 다른 모든일들과 병행해 평생을 부지런히 해나가야하는것이다.


  그렇게 시간에 치여 중년이 되었지만 앞으로의 시간은 다를것이다. 또 여전히 닥쳐오는 문제들로 정신 못 차리며 우왕좌왕하며 방황하며 살아가겠지.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하게 하고 싶은 건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참고 버텨내기만 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소중히 하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담담하게 살아나갈 거라는 것. 좋아하는 일들을 즐겁게 하면서  일상을 행복하게 가꾸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 목표 달성, 자기희생 이런 단어와 이별하고 싶다. 숨만 쉬면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이렇게 숨 쉬고 살아있는 게 기쁜 삶을 살고 싶다. 앞으로의 시간은 성취와 목표달성 같은것들과는 상관없는 풍요와 여유로움 속에서 진짜 나를 발견하는 기쁨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착실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조용히 혼자 잠깐씩 설레어하며 살기만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 그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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