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프게 하던 건 흔들림이 아니라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때렸던 나야

by 햇기

'집에 들어오지 마'

그 날카로운 말을 끝으로 엄마와의 메신저 대화는 종료되었다.


눈앞이 아득하며 깜깜해진다.

명치 아랫부근은 빨려 들어가듯 혼란스럽고 깊고 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손끝이 떨리며 그대로 꺼져버린 휴대폰을 내려놓고 말았다.

"..."

잠깐 침묵의 순간 후 몰려오는 감정의 파도를 감당하지 못한다.


눈물은 언제나 진솔하다.

꽉 차버린 욕조의 마개를 뽁 하고 빼버린 것처럼

눈의 작은 구멍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똑.. 똑..

주르륵


멍해져 버렸던 나는 눈물이 시작되자, 모든 것들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사실 멍한 건 그대로였다.

그냥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보듯

괴로워하는 나를 멀리서 지켜보는 느낌이 되었다.


눈물이 빨갛게 된 뺨을 타고 흘러, 콧물이 입가로 내려와

얼굴이 지저분하게 되었다.


아마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떠는 것 같아.

심하진 않지만..


그러다

스스로 왼손을 들어

철썩

뺨을 때렸다.


작은 생채기가 생긴 뺨과 동시에 부어오르는 마음이 보인다.


옆의 사람은 어쩔 줄 몰라한다.

진정하라고 괜찮다고

당황하는 듯 하기도, 애원하는 듯 하기도 한 목소리를 낸다.

흐느끼는 소리가 꽤 시끄럽다.

여기 방음이 잘 되었던가

걱정이다.












나는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나 정도의 환경을 가진 사람은'

불행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큰 사고, 사건, 죽음, 폭행, 충격...

모두 다 나와 먼 것이었다.


불행은 응당 그러한 것들에서 존재해야 한다 생각했다.


나처럼 괜찮은 가정에서 자라고, 큰 사건을 겪지 않은 불행할 이유가 없는 아이는

불행하면 안 된다....


그런데 아마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아이의 삶은 멀쩡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이는 기댈 곳 없이 외로워했다.

늘 따뜻한 품에 안기고 싶어 했다.


아이는 분명 아파했다.

인정받지 못하고, 늘 부정만 당하는 게

너무 아파 엉엉 울기도 잠시,

다시 일어서 혼자일어서 나아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울음을 억지로 삼키며 나아갔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자신이 아팠던 것조차 잊게 되었다.

상처는 아물지 못해 계속 맘 구석에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그래서 계속 슬프고 눈물이 나고 하는 것도 모르고

계속 채찍질하며 나아가려 했다.


쌓이고 쌓여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마음이 그만하라 외쳤을 때 아이는 멈춰 섰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는 왜 멈춰 서게 됐는지 몰랐다.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 그래"


다시 나아가기 위해 채찍을 들려했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이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 안의 어린, 상처받은 내가 분명히 있다.


나는 살아가기 위해 슬퍼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 아파하는 그 아이를 외면했다.

인정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10년도 더 지난 지금

조용히 마음을 들여다보니

그 아이는 여전히 존재했다.


엉엉 울면서 자신을 언젠간 봐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으로 다 커버린 내가 기대 없이,

용히 다가갔다.


아이는 나를 조심스럽게 쳐다보고,

팔을 뻗어왔다.

느리지만 꽉 안아주는 따뜻하고 포근한 포옹.

아이는 날 보며 따뜻이 웃어주었다.

내가 몇십 년을 외면하고, 채찍질하며 끌고 온 아이는 또 한 번 날 믿어보겠다는 신호를 보내줬다.


아이는 한 번도 나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혼자서 외롭게, 너무 무섭고 아파했지만

용기 있었던 아이는 내가 다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붙잡아 주었다.

아이는 내가 죽지 않고 살아가게 하고 있었다.

난 그걸 모르고 있었다.


그저 바라봐주고 안아줬으면 됐는데.

너무 아팠겠다. 외로웠겠다. 이렇게

알아줬으면 됐는데...






그 긴 세월 동안 나를 아프게 했던 것은 흔들림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럴 때마다 나를 부정하며 스스로를 헐뜯던 나였다.


상처는 누구나 받을 수 있다.

큰 사건이 닥치지 않더라도 아플 수 있다.


아픔조차 맘껏 느끼지 못한다면 얼마나 서러울까?


부디 많은 아픔들이 인정받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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