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그대로 두는 밤

by 햇기


“ 술에 내 슬픔이 옅어지게 하고 싶지 않아.”


버스에서 내려 , 3초간 신호가 바뀌길 기다린 후에

건너편에서 불빛을 내뿜는 편의점으로 걸음을 향했다.


무심코 도착한 냉장음료 코너 앞에 서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 술을 마시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 거야..

하지만 지금 내 안의 감정들이 없어져 버릴 것 같아.."


다시 미지근한 눈으로 줄줄이 놓여있는 맥주캔들을 훑어본다.

처음으로 술을 마시는 게 "아깝다"라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취한다는 게 어떤 것 인지 잘 몰랐다.

술을 마시면 감각이 둔해지고 묘하게 웃음이 새어 나오고,

약간 브레이크가 풀린 듯이 말이 나오는..

그런 이상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마시면 마실수록,

술에 취하는 느낌이 좋았다.


특히 술을 처음 접하기 시작한

20살 무렵에는 우울증이 심한 상태였다.


매일 죽고 싶은 생각에, 삶의 낙은 없었다.

하루하루 살아있다는 게 너무 괴로웠다.


.. 술을 마시면 그런 생각들이 적어져서

취한 상태를 계속 원하게 됐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내가 술에 취하는 걸 원치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내 몸은 고통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괴로워하며 술을 찾았다.









상황이 바뀌는 만큼 나는 계속

술에 '중독'된 상태로 살지 않을 수 있었다.


어쨌든, 학교에 가고 하는 둥 일상생활을 해야 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무서웠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안 마시고,

또 마실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최대한 마시고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21살 때 시작해 2년 좀 안되게 이어졌던 나의 연애는

불안정함의 반복이었다.


상처투성이인 나에게

사랑이란 건 너무 어려웠다.


그렇게 헤어지고 만나고 하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처음으로 든 것이다.


'술을 마시면 취하게 될 거고 ,

그럼 나의 기억과 아픔과 슬픔이 모두 옅어지게 될 거야'


그게 너무 아까웠다.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그랬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그냥 수도꼭지를 틀어둔 세면대에

어느 순간 물이 차올라 넘치려 하듯,


나도 그냥 그 순간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떠오른 생각은

집요하게 나를 쫓아와, 결국 편의점에서

아무것도 사지 못하게 했다.









터덜터덜 빈 손으로 집으로 돌아가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더라.


조금 충격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아픈 기억은 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술을 마시면 그 순간만은 마치 내 인생에 슬픔은 없는 것 같이

느껴져서 마셔왔다.


그런데 슬픔도 나의 일부였고,

그래서 그걸 잃는다는 게 마음 아팠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 생각일까 궁금하다.


슬픔이란 걸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괴로운 게 있다 해도 술으로 지우려는 선택이 좋은 걸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술을 친목의 목적과 즐거움의 이유로 마시기도 하니까.


그저 나는 아픔을 지우기 위해 마셔왔고

이제는 조금 의문이 생겼을 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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