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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님 Apr 22. 2023

타고난 예민함에 관하여

내향인의 삶

마치 스트레스 때문에 케이지 하나당 한 마리만 들어가야 하는 동물처럼

나는 혼자를 베이스로 누군가와 잠깐씩 만나는 삶을 살아간다.


아마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이 잡아간 첫 번째 인간이 나라면,

'지구인은 스트레스에 취약하니 케이지 하나에 지구인 하나만 넣어야겠군.'이라는 실험결과를 내릴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고립되면 어딘가 맛이 갈 것이 자명하다. 필요한 최소한의 외부자극은 고정적으로 직장에서 해결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이 얼마나 좋은가 사회성도 잃지 않게 해 주고 월급도 준다(^^).


사실 어른이 되기 전까진 내가 예민한 편인 줄 몰랐다. 우리 엄마도 몰랐다.

우리 부모님은 늘 (나 스스로는 사춘기룰 세게 겪은 것 같은데 ) 사춘기도 무난히 넘긴 키우기 힘들지 않은 자식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둔해서 아픈 줄 모르고, 둔해서 여기저기 다쳐온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런 부모님의 말을 듣고 자란 나는 내가 당연히 무던한 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이틀에 한 번씩 체하는 경이로운 소화기관, 달고 살았던 장염, 두통인 줄 몰랐던 미세한 두통, 어린이치곤 3일 밤낮 야근한 것 같은 수면패턴 등에 따라 확실히 편안한 기질을 가진 아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감수성이 예민하고 감정조절을 못해서 널을 뛰는 10대 시절, 나의 불량한 소화기관은 늘 나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성장기에 체하고 토하고 아프고를 반복하다가, 더 이상 체하는 것이 줄어들자(그냥 소식했다) 딱 꼬집어 정의하기 힘든 복통과 과민성대장증후군 문제가 날 괴롭혔다. 


아무튼 소화기관에 문제가 있는 애가 예민한 건지 예민한 애가 소화기관에 문제가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 두 개를 떼어내긴 힘들다고 늘 생각한다.





그렇게 예민한 나는 자라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 어른으로 자라 버렸다. 

물론 나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고 가족들을 사랑한다. 그들과 같이 있기 위해 스케줄을 무리하게 수정할 때도 있다.(무려 주말 내내 함께 있는 등, 이건 나에게 엄청난 일이다.)


그러나 타고난 체력의 문제인지, 정신력의 문제인지 한계치로 피로하다 싶으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한다. 일단 그들 조차 내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보내고 나서 거울을 보면 분명 주말이라 쉬었는데도 피부가 까칠하고, 다크서클이 지고, 안색이 좋질 않다. 분명! 집에서 놀았는데도!


내 공간에 누군가를 들여서 함께 쉬는 것조차, 나에겐 극 긴장도를 요하는 일인 것 같다. 


예민함에도 갈래가 있다면 나는 '외부자극에 의한 긴장도가 높은 사람'인 것 같다고 현재까진 그렇게 정의하고 있다. 

예민함의 이면으로 나는 어떤 것에 대해선 병적으로 둔감한데, 이것이 예민함을 의식한 학습된 둔감함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이면 탓에 나와 가족들은 20년 넘게 둔감하다고 생각하고 살았으므로 타고난 것 같기도 하다. 




 일단 나는 나의 상태에 둔감하다. 내가 두통이 이렇게 잦은 지, 배고프면 나쁜 생각을 하고 까칠해지는지 몰랐다. 바른생활을 시도하고 대학을 졸업하고야 알았다. 

당연히 배가 고프면 사람은 예민해지지만 나는 그게 태도가 아니라 생각까지 그렇게 변하는 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배도 고프지 않고 잠도 잘 잤는데 예민하게 반응한다면 그땐 두통을 앓는 중이란 걸 커서야 알았다. 내가 아픈데도 모른다니...


두 번째로 관심 없는 사람에게 비정상적일 정도로 둔감하다. 이건 아마도 피로함 때문에 의식적으로 만들어 낸 둔함 같은데, 일단 주변에 누가 지나가도 알아보는 일이 적고, 이런저런 이슈가 느린 편이다. 

이건 가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전 직장을 다니면서 더욱 강화된 기질이기도 하다. 내 의식에서 배제하다 보니 내가 '관심 두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영역이 확실하기 나뉘게 되었다. 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세 번째로 혼자 하는 활동을 선호한다. 나는 사람들이 모두 나 같은 줄 알았다. 

그래서 가끔 외향인과 얘기하다 보면 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나는 외향인에게도 건강한 외향인과 그렇지 않은 외향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향인들은 다 건강한 기질인 줄.

 

나는 첫째론 누굴 만나는 게 피곤하기도 하지만!

둘째로 주말에 글도 쓰고, 청소도 하고, 책도 읽고, 소소한 도전도 해보고, 그림도 그리고 하루가 바쁜 내향인이다. 출근해서 스몰토크로' 주말에 뭐 했어요?' 하면 '그냥 집에 있었어요^^'가 되는 일들 뿐이지만 나는 나름대로 바쁘다. 


그런데 몇몇 외향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주말에 뭐해요?"

"약속이 없어요~ 뭐 하지."

"음~ 이번 주에 일도 많고 바빴으니 집에서 쉬면 되겠네(잘됐다)."

"하하하 집에서 혼자 뭐해요~ 친구 만날까?"

이렇게 된다는 것이다. 


아니, 집에서, 혼자, 뭐, 한다니???

원래 주말은 주 5일 동안 외부자극을 과하게 받아 깎인 나의 심신을 달래고, 이너피스하는 시간이 아니었던 것인가? 아니 적어도 토요일엔 사람을 만나고 일요일엔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이 아닌 건가?

일요일까지 약속을 잡다니 체력이 너무 대단하다...라고 사고가 흘러가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예민함=내향인 인지 예민하고도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할 수 있는지 잘 모른다. 

아무튼 나는 예민하고 내향인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 때까진 공부+연애가 되었는데, 직장+연애는 상상을 할 수가 없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만난다면 가능할 듯(그럴 바엔 왜 하냐고 소개팅주선을 시도하려던 친구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내가 해달라고 안 했잖아)...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그 시간을 나누어 가족과 그런 나를 기다려주는 친구들을 만나는데 시간을 쏟기도 너무 바쁘다. 내가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친구들과는 농담으로 아직도 그런 얘기를 한다. 

50대가 되면 같은 아파트 위층 아래층에 살자고. 서로의 비상연락망이 되어주자고. 


가끔은 생각한다.

 체력이 커지면 사람들과 닿아있을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날까.

삶은 나에게 꽤 불리하지만 어떻게든 땅에 발붙이고 살아야 하니까, 오늘도 고군분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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