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증이 또 오셨어요
나의 취침시간은 21시 30분~22시 30분 사이,
기상시간은 컨디션 별로 05시~6시 30분 사이로 꽤 유동적이다.
시간을 딱 강제해서 좋은 꼴을 볼리 없고, 자유도가 있다는 점에서 나는 꽤 잘 지키게 되었다.
뭐가 되었든 나한테 부담을 주거나 부정적 인식을 통해서 겁주는 방식으로 성공해 본 적이 없다.
이번주는 날씨가 변덕이라서 그런지 내내 피곤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피곤해서 컨디션 맞추어 조금 더 자기로 했다.
그런데 일어나자마자 자동적으로 오늘 할 일 목록이 떠올랐다.
브런치 글쓰기, 출근 후 해야 할 업무 1, 업무 2, 퇴근 전에 끝내야 할 업무 1, 업무 2, 업무 3...
조급증이 생겼다. 물을 마시고 뭐고 당장 글을 쓰고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일하는 시간에 느끼는 그런 급한 마음이 아침 시간에 생겨버렸다.
출근 시간만 잘 지켜도 못할 일이 없는데, 나는 미리 '여유 있게' 해놓는 것에서 미리의 '미리'해놓기 위해 또 조급해졌다. 역시 나는 중간이 없다.
따뜻한 물을 부랴부랴 끓이고 자리에 앉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뭐 하는 거지?'
글 쓰는 거야 아침에 여유 있게 명상하는 기분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고, 매일 쓰면 좋지만 꼭 매일 올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의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일을 미리 해두는 건 글을 쓰고 책을 읽기에도 여유가 있다면 목록 정리 겸 '시작'만 해두기 위해서 했던 일이었다.
가장 중요한 기상 이유는 따로 있는데 의무감과 일 두 가지가 이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내가 일찍 일어나는 이유는 출근시간에 쫓겨 일어나서 괴롭게 출근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아침에 여유 있게 시간을 두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시간 확보를 위해서 나는 전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어나자마자 급하게 노트북을 켜고 앉는 것은 주객전도가 된 것이다.
요즘 부지런한 나에 빠져 나를 소홀히 했다.
우선 물을 끓이고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 메일을 켜지 않았다.
멍~하게 물을 마시면서도 나도 모르게 메일함을 확인하거나 제출할 파일을 뒤적이려던 것을 참았다.
급한때면 모를까 집에 일을 가져오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나도 모르게 허용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업무파악을 끝내고 오후에 급하지 않게 일을 한 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중간이 없는 나는 그렇다고 여유 있게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분명 나는 릴랙스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늘 무언가 조급하게 하려 하고(티 내지 않더라도), 일희일비했다.
직장에서 나의 작은 실수에 '그럴 수 있지'하고 수습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그전까진 꽤나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물 한 잔을 다 마시고, 정신을 차린 후에 당분간 아침시간에 업무를 일절 하지 않기로 했다.
우선 오늘 아침에 보내야 할 일만 빼고...(결국 파일을 켜서 다시 확인하고 이상 없는지 확인하고 껐다.)
글을 쓰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강박감은 갖지 않기로 했다.
보통은 글을 매일 한 편 써라, 쓰기로 했으면 조금 귀찮아도 앉아서 무조건 써라라고들 많이 하던데
나랑은 맞지 않는 것 같다.
꼭 쓰지 않아도 된다. 쓰고 싶은 기분을 만들자.
출근이 덜 괴롭기 위해, 평일도 주말의 3분의 1 만큼이라도 편하고 행복하기 위해 아침을 이용하기로 했다.
일이 밀리는 날이 괴롭다면 그렇게 써도 되지만 미리의 '미리'를 하기 위해 시간을 쓰지 말아야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의 시간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