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손을 통해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에 몸이 전율하는 듯하다. 그저 손과 손을 잡았을 뿐이다. 내 작은 손을 완전히 뒤덮는 큰 손,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부들부들 몸이 떨린다. 어느새 가을의 마지막 끝자락을 살짝 움켜잡고 있다. 힘을 조금만 빼버리면 정확한 시작과 끝도 없이 스르륵 겨울의 문 안으로 성큼 들어갈 태세이다. 얼굴에 맞닿은 차가운 공기에 광대뼈가 얼얼하다.
자동차에 시동을 켜니 타이어 공기압 부족을 알리는 알림이 빨간색으로 빛난다. 자동차마저도 새벽녘 차가워진 공기에 적응이 되지 않은 듯하다. 바람이 외투 사이로 침투할 틈바구니를 찾는다. 단단히 움켜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내 안으로 파고든 찬 기운에 마음도 얼어붙는다.
어느덧 시간은 오전의 경계를 넘어 오후로 진입해 간다. 바람은 시리지만 햇살은 따스해지는 시간이다. 냉랭해진 몸을 녹일 카페로 들어선다. 얼마 전 검색을 하다 우연히 발견한 카페는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덕에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입구 옆으로 작은 방이 하나 독채처럼 자리 잡고 있고 쭉 이어진 돌을 밟아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주문을 할 수 있는 건물이 나온다. 운동을 하고 온 덕에 출출해진 주린 배를 채우려 아침 겸 점심 식사 메뉴를 찾아본다. 아메리카노 한 잔과 누텔라 초코렛이 발라진 토스트를 주문 후 앉을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주문하는 곳을 나와 바로 맞은편 건물을 눈으로 훑는다. 따스해 보이는 실내 자리들이 보인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다. 출근 전 가지는 나만의 오롯한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보통 조용한 자리를 찾는 편이다. 아무도 없음에 이끌려 들어가려 한 발자국 떼다 순간 멈칫한다. 실내에 들어가면 바람은 불지 않지만 햇빛을 느낄 수가 없다. 바람은 차지만 햇살 아래 있으면 실내보다 실외가 더 따뜻하다. 따스한 햇살을 느끼고싶었다.
발을 돌려 카페 구석으로 향한다. 건물을 등 뒤로 하고 햇빛이 내 몸을 비추는 자리에 앉는다. 커피와 토스트를 테이블에 두고 무릎을 덮을 담요도 하나 가지고 온다. 햇빛을 외투처럼 입고 담요를 무릎에 걸치니 추위도 견딜만하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책을 펼쳐 든다.
한참을 책을 읽다 파라솔 위로 반짝이는 빛을 발견한다. 햇빛이 내 핸드폰에 부딪치고 튕겨 파라솔 위로 네모난 빛을 만들어냈다. 어릴 적 하던 반사놀이가 생각나 핸드폰을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빛이 흔들흔들 내 손에 잡힌 핸드폰을 신나게 따라온다. 집중하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가에도 미소가 띄워진다.
그러다 내 몸이 햇빛으로 데워져 더 이상 춥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아니 약간 덥게 느껴지기 시작할 정도이다. 몸이 따스해지니 울기에 찬 내 마음마저도 열기에 녹는다.
햇빛 아래 있던 시간이 아주 긴 시간도 아니었다. 건물과 온갖 조형물들이 가리고 있어 어깨 정도에만 가늘게 내리쬐던 빛이었다. 주위 그늘진 자리에서는 앉아 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잠깐의 시간동안 가느다란 빛 한줄기가 내 몸 전체를 데웠다.
온기란 혈관을 통해 피가 흐르는 생명체가 살기 위해 응당 필요한 것이 아닐까. 유명한 실험이 있다. 어미와 떨어진 아기 원숭이에게 우유가 나오는 차가운 금속 모형과 우유는 안나오지만 포근함이 느껴지는 천으로 된 모형을 주었다. 아기 원숭이는 배고픔을 느낄 때만 금속 모형에 가서 우유를 먹고 나머지 시간은 천으로 된 모형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 식, 주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음을 가진 인간이기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상처입은 마음을 어루만져줄 온기가 필요하다. 그 빛 하나만 있으면 인생의 차가운 바람도 견뎌낼 수 있다.
언덕 위에 홀로 서서 사방에서 막무가내로 불어오는 비바람을 견뎌내기란 버거운 일이다. 움직일 수도 피할 수도 없다. 그저 묵묵히 맞고 또 맞을 뿐이다. 나뭇가지는 부러지고 멍이 든다. 괜찮은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남기 위해 익숙해져가고 무뎌지는 일만 반복한다.
그러다 햇빛이 지친 나무 위로 비치면 온 세상이 밝아진다. 비바람은 멈추고 따스함이 대지를 채운다. 그 보살핌과 관심으로 기꺼이 세상을 견뎌낼 것이었다.
그를 만나고 손을 마주 잡았다. 오랜 시간을 지나 처음 닿은 손의 온기에 마음이 떨렸다. 설레는 마음 위로 따스함이 뒤덮여 온몸을 가득 채웠다. 안았을 때 느껴지는 숨결과 따뜻함이 불안했던 내 맘을 잠재웠다. 햇살이 비추는 듯 했다.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더 이상의 말도 더 이상의 어떤 것도 필요치 않았다. 그 존재가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이었다.
등 뒤로 내리쬐던 햇빛이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서서히 열기를 잃어가며 순간 추위가 나를 덮친다. 담요를 정리하고 일어날 준비를 하며 카페 정원 한쪽을 바라본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숨겨진 등불이 고개를 든다. 햇빛 대신 어둠을 밝힐 따뜻한 등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