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에 시린 바람이 매달렸다. 겨울 바다에 서니 하얀 얼음 결정이 서서히 형성되듯 마음은 얼어 붙어갔다. 차가운 바람에 빰을 두드려 맞고 나면 정신은 한없이 또렷해져만 갔다. 짙고 어두운 쪽빛 물감이 바다에 풀어져 있었다. 부서지는 하얀 포말이 바닷가에 부딪혔지만 바다색과는 결코 섞이지 않았다.
영일대를 걷고 있자니 포항에 온 게 실감이 났다. 오랜만에 해돋이를 보기 위해 떠나온 여행이었다. 처음 목적지는 호미곶이었지만 오는 도중 마음이 바뀌었다. 십여 년 전 바닷가를 같이 거닐던 누군가가 생각났기 때문이리라. 그때도 겨울이었다. 몸은 추웠지만 따뜻한 손을 통해 전해지는 마음은 따스하기만 했다. 존재의 부재를 느끼며 혼자 찾은 내 허리춤에 느껴지는 한기가 진군하는 서리 군대 마냥 느껴졌다.
높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름은 바람에 떠밀리듯 빠르게 지나갔다. 잡아보려 손을 뻗어도 어찌나 빠른지 잡는 족족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갔다. 내게서 빠져나간 사람의 흔적처럼 남아 있지 않았다. 덕분에 하늘은 구름도 거의 없이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만 가득했다.
천천히 해상 누각쪽으로 걸어가본다. 올 때마다 넘실거리는 물결 위에 고즈넉이 앉아있는 누각을 보면 바다 위에 떠있는 군함같은 웅장함이 느껴졌다. 바닥에 촘촘히 박혀있는 벽돌 하나 하나에 발 하나 하나를 넣으며 걸어본다. 조금이라도 발이 회색 벽돌에서 튀어 나가면 게임에서 진다. 저 멀리 상상 속 상대와 혼자 하는 게임이지만 쓸쓸한 마음을 조금은 덮어주었다.
누각 아래에서 윗층으로 연결된 나무 계단을 오른다. 저 계단을 올라 누각 위에 도달하면 그 사람과 함께 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그 시간을 타고 과거를 회상한다.
서서히 붉은 해가 고개를 들이민다. 청명한 하늘에 빨강, 주황빛이 퍼져 나간다. 오늘따라 강렬한 태양이 일직선으로 바다 위에 길을 그린다. 넓게 퍼지는 하얀 플레어 스커트를 입고 금빛 길을 거닐어 본다. 붉었던 태양이 금빛으로 그려낸 윤슬 위로 과거의 나도 천천히 걸어간다.
저 멀리 태양 속으로 점이 되어 사라져 버린 내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결국 혼자 다시 찾았지만 영일대는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다가올 희망만이 내 마음 속 기대감으로 부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