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기를 부렸던건가.. 몇 해전부터 무릎이 좋지 않은 것은 알고 있었다. 오랜 시간 서 있거나 뛰면 무릎에 물이 차고 부어올랐다. 삐끄덕 거리는 내 몸 상태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마다 잠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약을 먹으면 금방 붓기는 가라앉았다. 그저 잠깐 그러려니 괜찮으려니 생각하고 또 몇 해가 지났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몸을 움직이니 무릎이 아프다는 사실도 잊고 그냥 그렇게 삼십대가 지났다. 요가를 하고 필라테스를 할 때도 괜찮았다. 가끔씩 달리기를 해도 등산을 해도 무릎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근육이 그나마 힘을 빌려준 탓이었을텐데 나는 그저 막연히 무릎이 나았다고 생각했다.
새해를 맞아 오랜만에 마라톤을 신청했다. 40대가 된 기념이라고 할까. 괜찮으려니 생각했다. 오랜만에 10km 라 준비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일주일에 5 km를 두 번 뛰었고 무릎이 또 너무 아팠다. 만지면 부은 게 느껴졌고 무릎을 구부릴때도 뻑뻑했다. 아픈 것은 가라앉지 않고 며칠이 지났다. 이 상태로는 마라톤에는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종합 병원에 가서 x-ray와 MRI를 찍었다. 요즘엔 병원에 가서 진찰이라도 하나 받으려면 세 네 시간은 기본인 듯 하다. 한참을 기다려 만난 의사 선생님은 “연골이 파열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수술을 해야합니다.”라고 하며 나의 무릎 상태가 얼마나 나쁜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셨다. 생면부지의 다른 사람의 뼈 사진들을 보여주며 이 상태로는 바로 수술 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할 때는 ‘내가 왜 저 뼈들을 봐야하지.’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의사 선생님의 휘몰아치는 멘트를 듣고 나니 정신이 몽롱해졌다.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뺨이라도 맞은 듯 했다.
주사를 맞고 약을 받아 나왔지만 지금 당장 수술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입원 기간이 2주는 되야 한다는 말이 하루하루 일하며 먹고 사는 입장에서 부담스러웠다. 병가를 낼 수 있는 직장도 아니지 않은가. 의사 선생님의 진단 전에는 약간의 통증이 있어도 걸을 때 크게 마음 쓰지 않았는데 갑자기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내 무릎이 크게 잘못될 것만 같아 발을 내딛기가 무서웠다.
그래도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이럴수록 근육을 더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었는지 원래 다니던 필라테스 운동을 무릎 보호대를 하고 갔다. 운동할 때는 크게 아프지 않았지만 지나고 나니 무릎이 더 아픈 듯 했다. 계단을 내려가고 올라갈 때마다 신경을 타고 고통이 무릎에서 허리까지 이어졌다. 운동을 안하는게 좋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모기가 윙윙대듯 귓가에서 맴돌았다.
마음대로 걷지 못해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고 삐걱대는 내 모습에 마음이 우울했다. 이러다 영영 제대로 걷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정말 수술을 해야할까 하는 의구심 사이에서 며칠을 지냈다. 2주 전에 멀쩡히 걷고 뛰었던 내 모습이 아득한 꿈 같았다. ‘정말 안좋으면 수술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수술을 해도 바로 좋아지지 않을 수도 있고 당장 생활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 불안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아직 많지 않은가.
확실하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어둠으로 스스로를 끌고 가는 것을 멈춰야 했다.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한번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검사한 결과지를 들고 더 큰 병원을 찾았다.
이미 현재 상황에서 나에게 최악의 경우를 듣고 난 후라 혹시 수술을 하라고 해도 담담히 맞이할 수 있었다. 추가적인 검사를 하고 또 한참을 기다려 마주한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촬영한 결과지도 훑어봤다. 직접 무릎을 만지며 진찰도 했다.
마침내 의사 선생님은 입을 열었다. 수술은 안해도 될 것 같다고, 아니 수술을 해도 나아지는게 아니라 했다. 무릎 연골이 안좋은 것도 맞고 그러다 파열이 된 것도 맞았다. 그러나 원인은 다른 게 아닌 노화, 즉 연골이 닳아서였다. 늙으면 흰머리가 나듯이 말이다. 수술을 안해도 된다는 말에 안도했다가 노화때문이라는 말과 수술해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말이 왠지 슬펐다. 바르는 약과 먹는 약으로 통증을 잡고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우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면 금방 좋아질거 같다는 말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금방이라도 뛸 수 있을 듯했다.
약간만 통증이 느껴져도 절뚝거리던 다리가 갑자기 잘 걸어졌다. 바닥을 내딛는 발에도 힘이 들어갔다. 인간이 이렇게 간사하다. 말 한마디로 병이 다 나은 듯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