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이십 층 창문 밖 건물벽과 베란다 샤시 사이 작은 틈 사이, 나무를 뽑아내려 했다. 몇 년동안 그 좁디좁은 틈 사이에서 죽지 않고 해마다 푸른 잎을 돋아내던 그 굳건함과 억셈으로 강하게 힘주어도 움직일 기미가 없다.
씨앗은 하늘 높이 높이 날아 바람을 타고 흘러갔다. 단단한 땅 위에 뿌리를 내리려 좋은 땅을 고르고 고르던 참이었다. 그저 아파트 창밖 공중에서 정착하기 전 마음껏 자유를 누리던 중이었다. 어느 순간 가볍던 몸이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분명 땅에 내려가려면 한참이 남아있었다. 씨앗은 당황해 주위를 두리번 거렸으리라. 그리고는 이내 움직일 수 없이 갇혀버린 자신을 깨달았다. 지표면에서는 한참 먼 그곳. 토양도 공간도 부족한 높은 공중, 그곳에서도 새싹을 피워내야만 했다. 씨앗의 사명은 그저 발아하여 뿌리를 뻗어나가 부여받은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니 말이다.
새싹이 돋았다. 희망이 자라났다. 포기하지 않고 자라고 자랐다. 베란다 창밖을 잘 쳐다보지 않는 집주인 덕분에 새싹은 작은 묘목으로 자랐다. 단단한 갈색 나뭇가지를 아득한 공중으로 뻗어나갔다. 어느새 제법 나무의 모습을 갖추자 집주인도 모를 수 없었다.
어느날 나는 깜짝 놀랐다. 날이 따뜻해져 오랜만에 창문을 열어봤다. 창문의 가장 아래 창문을 끝까지 열어도 손이 닿을 듯 말듯한 애매한 장소에서 초록색 나뭇잎이 보였다. 이렇게 높은 곳에 설마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바라봤을 때 그곳에 분명 작은 묘목이 해를 간절히 갈망하듯 공중으로 나뭇가지를 뻗어 잎을 피워내고 있었다. 그 작지만 강한 생명력에 놀랐지만 감탄했다.
뽑아내야 할까 한참을 갈등하다 손을 뻗어 보았다. 나무를 뽑아내려다 내가 떨어질 것 같았다. '살고 싶은가 보다. 이 나무도 살고 싶어 이렇게 내 손에 잘 닿지 않는 곳에 뿌리를 내렸나 보다.' 그저 그 작은 생명에 존재의 의미를 부여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얼마나 더 자라겠어.' 하는 마음으로 그저 묘목을 그 곳에 두었다.
집주인의 방관에 나무는 더더욱 자라났다. 한여름 동안에는 장맛비가 나무에게 힘을 주었다. 가을에는 여느 활엽수처럼 나뭇잎 색을 바꾸고 잎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겨울에는 봄날을 기다리며 바짝 마른체 움츠렸다.
더이상은 나무를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겨울이라 말라버렸지만 나무는 그 틈에서 자랐다는게 믿을 수 없게도 잘 자랐다. 몇 년을 알고도 침묵으로 무시하려 했지만 균열이라도 일으키면 큰일이리라. 모종삽을 챙겨 창문을 활짝 열었다. 나무가 많이 자라버려서 내 손에도 닿았다. 뿌리까지는 닿지 않지만 나뭇가지는 잡아 당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잔인하지만 선택해야 했다. 건물을 생각하면 뽑는게 당연하다는 이성과 이것도 생명인데 안쓰러움을 느끼는 감성이 대치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성을 따르기로 했다. 지금이 나무를 뽑아버릴 기회였다. 곧 봄이 되어 나무에 싹이라도 나면 뽑아내는 마음이 슬플 것 같았다. 나무가지를 틀어잡고 힘차게 비틀었다. 나무는 휘어지고 꺾였지만 뿌리까지 뽑아버릴 수는 없었다. 어찌나 단단한지 무리하게 힘을 주었다가는 오히려 균열이 생겨버릴것 같았다.
사실상 나의 패배였다. 나무는 꺾였지만 삽으로도 힘으로도 뽑아버릴 수 없었다. 어쩔수 없이 오늘은 그냥 나무를 두기로 했다. 이 정도면 다시 싹이 나지는 않으리라. 더이상 크지는 않으리라 생각을 하면서 나무에서 손을 뗐다.
어느덧 날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다른 나무에서는 조금씩 연한 새싹들이 고개를 내미는 듯 했다. 슬쩍 커튼을 걷어 창밖에 꺾여진 나뭇가지만 덩그러니 남은 나무를 바라보았다. 아직 싹은 돋지 않은 듯 했다. 다시 자라지 않아 안심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씁쓸했다.
이성과 감성의 줄다리기에서 적절한 위치를 잡아 내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늘 어렵다. 갈팡질팡 하는 내가 나도 우습다.
과연 새싹은 돋아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