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무척 바쁘다. 꽃놀이를 가는 건지 내가 꽃에 놀아나는건지 모르겠다. 금방 피었다 져 버리는 꽃에 쫓기듯 사진 한 장이라도 남겨보려 바지런히도 움직인다.
유난히 올 것같지 않았던 올해 봄도 슬금슬금 오고 있었던 듯 하다. 얼마전 운전을 하며 가로수에 줄지어 서있는 벚꽃 나무를 바라보았다. 3월 말인데도 피지 않은 꽃에 봄이 오기는 하려나 얼어붙은 마음만 훔쳤더랬다. 어느때는 한여름처럼 덥다가 갑자기 초겨울처럼 추워지는 오락가락 날씨 덕에 꽃들도 맥을 못추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추운 틈바구니 사이 따뜻한 온기에 꽃망울이 맺히더니 다시 추워진 날씨에도 시간을 되돌릴수는 없다는 듯 바들바들 떨며 꽃을 피워낸다. 도시 가로수에, 시골길에 온통 하얀 눈이 내렸다. 내 맘도 설레여 춤을 춘다. 몇 해만에 다르게 느껴지는 봄 풍경이었다. 텅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함께 꽃을 보러 갈 사람이 생겼으니 말이다.
추억을 남기고 싶다. 기억을 남기고 싶다.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해왔던 가족과의 사진도 남겨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사진을 남기느라 일주일에도 몇번씩 꽃이 핀 곳을 찾는다. 꽃이 피어있는 이 시기가 아깝기라도 하듯 시간날때 마다 쉼없이 밖으로 향한다.
그러던 내가 오늘은 혼자서 길을 나선다. 할 일도 벚꽃 나무 아래에서 하려 돗자리와 의자도 챙긴다. 조용한 강변 옆 벚꽃 나무가 줄지어 제법 풍성하게 핀 곳을 찾는다. 여기도 조용히 벚꽃 감상을 하기에 좋다고 내 머릿 속 저장된 리스트 중 한 곳이다.
벚꽃 나무 아래 적당한 곳에 돗자리를 편다. 돗자리 위에 캠핑용 좌식 의자를 하나 깔고 다리를 쭉 뻗어 그 위에 담요를 덮어둔다. 혼자만의 소풍 시간이다. 책을 꺼내들고 이어폰을 귀에 꽂아본다. 벚꽃 아래 돗자리를 깔고 앉아 눈앞에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는 이 여유로운 시간이 너무 감사하다.
그 순간 벚꽃잎 하나가 돗자리 안으로 날아들었다. 이어폰에서 들리는 음악 사이사이로 새소리가 지저귀고 있었다. 나에게 떨어진 선물같이 꽃잎을 주워들었다. 꽃잎을 책 사이에 끼워두고 잠시 벚꽃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이 옆을 향한다. 귀에 꽂은 이어폰 덕에 옆에 누가 오는지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무심하던 나였다. 한무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느 순간 우르르 돗자리를 깔고 의자를 들고 와서는 어린아이들이 소풍왔듯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계신다. 그 순간 스치듯 어제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와 수양벚꽃을 보러 가서 꽃놀이를 하고 점심식사를 위해 파스타집을 찾았다. 아직은 때이른 점심시간이라 별무리없이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고 스프 한 숟가락을 입안으로 넣던 차 였다. 할머니 한분이 90도로 꺾어진 허리로 지팡이를 짚으신채 가게 문밖 의자에 앉으신다. 뒤이어 걸음을 보조하는 유모차를 끌고 다른 할머니가 등장하더니 할머니 몇 분이 연이어 밖에서 대기를 하신다. 이미 가게 안 자리는 만석이었다. 함께 오신듯한 조금은 젊은 여성분이 대기 명단을 작성하고 할머니들과 함께 기다리신다. 이미 우리 음식은 나오고 있는데 밖에서 기다리시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괜히 안절부절이었다. 기다리시는 그 시간이 괜히 힘드실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저렇게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들도 피자와 파스타를 드시러 오시는 풍경이 괜히 생경스러웠다.
지금 내 옆에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벚꽃 아래 소풍을 하러 나오신 듯 했다. 주간보호센터와 같은 그런 곳에서 나온듯한 젊은 사람들 몇몇은 옆에 서서 사진을 찍어댄다. 먹거리도 잔뜩 싸온신 듯 하다. 왁자지껄 이야기를 하시며 음식을 나누시다가 갑자기 트로트가 흘러나온다. 박수를 치며 흥겨워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가운데로 노래를 부르시며 또 다른 할머니가 등장한다. 벚꽃 아래 젊은이들처럼 봄을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물리적 시간을 건너서 누구의 마음에나 봄은 온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봄은 내가 느끼는 것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래서 이렇게 파스타 가게로, 벚꽃 아래로 나오시는 게 아닐까. 한 순간,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내 앞에 흘러가는 저 잔잔한 물결처럼 나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 머리에 흰 눈이 내릴 것이다. 그때엔 나도 사랑하는 이들과 지팡이를 짚고, 파스타 집으로 벚꽃 나무 아래로 봄을 즐기러 나올까. 그때가 되면 떨어지는 벚꽃 아래에서 박수를 치고 있을 나를 내게 떨어진 벚꽃 잎에 담아 책 사이에 꽂아두었다. 아직은 조금 더 봄날을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