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었다. 아파트 화단과 하천 주변들도 한창 봄을 맞아 정돈을 한다. 위이잉 하는 소리에 풀이 잘려나간다. 온 대기 가득 코를 찌를 듯한 풀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풀은 고통으로 절규한다. 풀은 냄새로 아픔을 표현한다. 소리는 없어도 공기 가득 가득찬 고통을 느낄때는 괜시리 내가 아파지는 것 같았다.
정말 아플때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패러글라이딩을 배운지 3년쯤 되어 어느정도 햇병아리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 즈음이었다. 봄날에 훈풍이 불고 아지랑이처럼 지면에서 따뜻한 기운이 눈에 보이지 않는 기둥을 하늘까지 뻗었다.
일교차가 심해 오전에 차가웠던 대지가 낮이 되면 햇빛으로 데워진다. 그러면 대지는 끓는 물에서 김이 솟아오르듯 모락모락 열기를 뿜어낸다. 그 열기둥을 찾고 이용해 패러글라이딩은 더 높게 더 멀리 날아간다. 그날도 그런 따스한 봄날이었다. 이륙장은 새로운 새싹과 꽃 등 새생명으로 가득했다. 내 맘도 그래서 들떴을까.
운전을 할때 2-3년쯤 지난후가 더 위험하다고 한다. 어느정도 익숙하지만 완전히 숙달은 되지 않은 상태, 이때 자만심이 가득차면 사고가 더 자주 일어난다. 주말마다 다니던 패러글라이딩에 자신감이 붙었을 때였다.
모든 비행체가 이륙할때와 착륙할때가 가장 위험하다. 안전 궤도에 들어가지 않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늘 사고가 난다.
이륙을 안전하게 해내자 자신감이 붙은 나는 하늘 아래에서 열기를 찾아 열심히 그 열기안에서 원을 그리면 빙글빙글 하늘을 누볐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땅이 익는다고 해야할까. 하늘위로 뻗치는 열기는 더욱 더 강해지고 거세진다. 그런 열기를 만나면 패러글라이딩은 순간적으로 버텨내지 못하고 이리저리 나부낀다. 그 흔들림을 잡아내지 못하면 사고가 일어난다.
3시쯤 지나 열기가 거세지자 다른 패러글라이딩이 나무 위로 추락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거세지는 기후에 하릴없이 마음을 접고 안전하게 착륙하려 착륙지로 향한다. 착륙지 위에서 내가 정한 장소에 착륙하기 위해 8자를 그리고 있던 중이었다. 지면에 가까워져 마지막으로 방향을 틀던 와중 갑자기 패러글라이딩 날개 한쪽이 접혔다.
하늘 위에서라면 날개가 접혀 추락하더라도 나무위로 떨어지거나 보조 낙하산을 던지면 된다. 하지만 너무 낮은 고도에서는 그럴수없다. 한쪽은 날개가 접혀있는데 다른 한쪽끝은 살아 앞으로 가려고 하니 접혀있는 날개를 회전축으로 빙글하고 패러글라이딩이 돌면서 회전이 들어가버렸다. 조종줄을 잡아 안정시키려고 했지만 시간이 너무나 짧았다.
그대로 나는 땅에 쳐박혔다. 패러글라이딩 의자인 하네스에 공기가 들어가서 충격을 완화해주기는 했지만 충격이 어찌나 큰지 폭발이라도 일어난듯한 굉음이 조용한 시골 마을을 울렸다. 나는 등으로 땅에 그대로 쳐박혔다.
허리와 상체에 전해지는 고통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폐가 터져버린 듯 숨을 쉬기 힘들었고 충격으로 나는 말을 할수 없었다. 너무나 아팠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지를 수 없었다. 그저 눈만 깜빡이며 얼굴을 가득 뒤덮은 흙의 차가움만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소리를 질러 구조를 요청하고 싶었지만 나오지 않는 목소리에 가슴은 타들어갔다.
인간에게는 와닿지 않는 주파수지만 모든 생명체는 자기 나름의 의사소통을 하고있다. 식물은 냄새와 소리로 표현한다고 한다. 물론 그 소리는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식물이 잘려질때 나는 풀냄새는 풀이 고통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인간이 물을 주지않을때도 풀은 우리가 모르는 주파수로 소리를 지른다. 돌봐줘야 할 인간에게 닿지 않는 외침을 식물은 얼마나 외쳤을까.
동물은 제법 잘 키워내는 나인데도 식물은 죽이기 일쑤였다. 동물은 살아서 움직이는 게 보이고 소리로, 움직임으로 의사를 표현하니 자연스레 손이 간다. 베란다에 내놓은 식물은 내가 볼일이 있어 베란다에 가지 않는 이상 방치된다.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죽기도 너무 안줘서 죽기도 한다. 식물들은 내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를 얼마나 질렀을까.
문득 세상은 사실 외침과 소리로 가득찬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귀에 들리지 않는 주파수로 내가 모르는 곳에서 고통으로 울부짖는 나무와 꽃들이 넘쳐나는 세상. 다시 한번 나는 그런 생명들의 외침을 외면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스스로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