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퀴즈쇼를 한다. 퀴즈쇼 전 한 사람은 커피를 쏟는 실수를 한다. 그러자 관객들은 실수했던 사람이 퀴즈를 맞출 때 더 많은 환호를 보낸다. 실수를 하는 사람에게 더 호의를 보여주는 이른바 "실수효과"이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 심려를 끼치고 싶지않았다. 내 스스로에게도 떳떳하고 싶었다. 무엇을 하든지 열심히했다. 다행히 공부하면 나쁘지않은 성적을 받았고, 배우면 곧 잘 했다. 어머니는 "넌 걱정안한다." 며 늘 얘기했다. 그런 인정이 싫지 않았다.
오빠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무엇을 해도 뛰어나지는 않았다. 그런 오빠에게 나는 늘 치였다. 혹시라도 오빠가 마음상할까 어머니는 상장을 받아와도 환하게 칭찬해주지 않았다. 내가 잘한 것에 대한 칭찬보다 오빠의 기분을 더 신경썼다. 오빠에게 마음이 더 갔던걸까. 서운했다.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상도 많이 받았다. 화가가 되고싶었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혼자서 생각했다. 화가로는 돈벌이 하기가 쉽지 않을거라고. 스스로 자립하기에는 선생님이 되는게 낫겠다고. 속 깊은 십대인 척 조용히 꿈을 묵살했다.
오빠는 공부로는 대학을 가기 쉽지 않았다. 그러자 고등학교 2학년 때 갑자기 미대를 가겠다며 미술학원을 등록했다. 공부하는데 돈 많이 들어갈까봐 변변치 않은 직업을 가질까봐 포기했던 꿈이었다.
성인이 되어 너무 힘들어 삶을 놓고 싶을 때에도 사람들은 말했다. "넌 잘 극복할거라고." 나 스스로도 안다. 포기하지는 않을거라는걸. 할 수있는 한 열심히 할거라는 걸. 그러나 때로는 서운한것도 사실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힘든데 위로받지 못하고 잘할거라고만 하며 당연한 듯 치부해버린다. 오히려 못하는 척 실수를 해야하나 고민했던 적도 있다. 그러면 나도 기댈 수있을까.
혼자서 일어날 수 있지만 누군가 먼저 손내민다면 나도 기꺼이 잡을 수 있는데 하는 생각들로 지친 몸을 쉬고도 싶었다.
시간이 지나며 모든게 무뎌진다. 내가 꼭 해야하고 나 아니면 안될것 같은 일도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일부러 실수하지도 않지만 억지로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지도 않는다. 빈틈 좀 있으면 어떤가. 실수 좀 하면 어떤가. 가끔하는 실수도 귀엽게 봐주고 그 빈틈도 메꿔주려는 사람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