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캘린더에 일정이 빼곡하다. 신경쓸 일도 할 일도 많다. 엄마로, 딸로, 여자로, 영어강사로, 나 자신으로...역할이 많은 나이다. 완벽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어느 하나도 소홀하고 싶지가 않다. 그러다보니 핸드폰 캘린더는 풍년이다. 거의 모든 날짜에 빼곡히 알알히 글이 맺혔다.
오늘 내 계획은 머릿속에서 이어졌다. 아침에 아이를 등교시킨 후 집으로 와서 30분 정도를 잔 후 요즘 피곤하고 일이 많아서 못했던 운동을 할 예정이었다. 아이 등교후 집으로 와 잠깐 핸드폰을 본다는게 30분을 허비했다.
눈을 감았다. 막상 잠이 드니 미친듯이 잠이 와 눈을 뜨니 이미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운동은 나중으로 미루고 허겁지겁 밥을 먹고 밖으로 나선다.
내일까지 도착해야 할 등기우편이 있어 우체국으로 향했다. 혹시 점심시간이 있을까해서 서둘렀지만 12시 조금 늦어 도착한 우체국은 굳게 잠겨있었다. 머릿속은 다른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열심히 작동한다.
제출해야 할 서류가 있어 근처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에서 볼일이 끝난 후 점심시간이 끝날 때 즈음 다시 우체국으로 향한다. 등기를 보내려 한다고 하니 " 국정자원 화재로 전산망이 늦어져 내일까지 못갈수도 있어요." 하는 직원의 말이 이어진다.
순간 가뜩이나 멍한 머릿 속이 더 멍해진다. 내일까지 꼭 도착해야 하는데..불확실성에 기대도 될까..? 얼른 집에 가서 운동을 하고 출근하려던 나의 계획은 이미 진흙더미에 가려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책을 또 세워야 했다. 머피의 법칙인가..자꾸 일이 꼬이는 듯 했다.
운동보다 등기 제출이 우선이라는 뇌의 판단에 따라 직접 운전해서 가기로 한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문이 잠겨있었다. 허탈한 실소가 새어나오는 듯 하다.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하니 앞에 놓고 가라고 한다.
그럼 됐지...부정적인 생각이 자꾸 올라왔지만 타협을 할수 밖에 없다. 내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어쨌든 제출했으니 된거라고..
어릴적에는 계획한대로 되지않으면 짜증이 밀려왔다. 내탓이면 자책했고, 다른 원인이 있으면 화살을 그곳으로 돌렸다.
이제는 순응한다. 아니 순응하려고 애쓴다. 세월과 내 몸에. 예전과는 같을 수는 없지않은가. 자꾸 깜빡하는 내 정신을 붙잡을 수 없다. 일이 안된다고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을 쌓을 필요도 없다. 조금 늦어져도 조금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도 했다는 것.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한다.
빼곡한 계획과는 달리 조금은 안되더라도 그러려니. 그럴수도 있지하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오늘 하루도 정신없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