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서 괜찮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관계
오늘도 나는 '나'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무단히 애를 쓴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가정을 꾸린 후에도, 문득문득 '나는 누구인가'라는 혼란스러운 물음 앞에 서게 될 때가 많다. 그래서 요즘,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연습을 조금씩 시작해나가고 있다. 그 연습의 길 위에서, 나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관계 속에서 잊었던 '나'를 찾아가는 소중한 순간들을 마주한다.
결혼 전, 직장에서의 힘겨움이 지쳐갈 무렵, 나는 그 힘든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처럼 결혼을 택하려 했다. 그때 고모님께서 내게 건네신 말씀은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다.
"직장은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만, 결혼은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 두기 힘들어." 고모님은 덧붙여 "네가 너로서 당당할 때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조언하셨다. 그 당시에는 막연하게만 들렸던 그 지혜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고모님과 같은 나이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무슨 말인지 절실히 깨달아졌다.
이제 나는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외로움 때문에 결혼을 선택하지 말라고,
힘든 상황에서의 도피처로 삼지 말라고,
싫은 집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택하지 말라고.
그 어떤 것도 회피하기 위한 결혼은 결국 스스로를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결혼은, 온전히 혼자서도 당당하고 멋진 '내 모습'일 때, 비로소 아름다운 동반자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나로서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을 하게 된다면, 결국 나의 미성숙함과 결핍이 '미운 화살'이 되어 배우자의 가슴에 꽂히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나 역시 지친 직장을 도피하기 위해 결혼을 택했지만,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정말 좋아했고, 내 삶의 가치를 함께 꿈꿀 수 있는 배우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외롭고 힘든 상황에서 맺어진 관계였기에, 배우자가 아무리 괜찮은 사람일지라도 나의 힘들었던 감정의 화살은 늘 배우자를 향했다.
"내가 외로운 이유는 너와 결혼해서 이고, 내가 여전히 힘든 이유도 너랑 결혼해서였다고..."
끝없는 핑계와 불평 속에서 내 곁의 소중한 존재를 탓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결혼 전 고모님이 해주셨던 말씀이 비로소 사무치게 와닿았다. '내가 나로서 바로 서지 않을 때, 누군가에게 기대기 위해 결혼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진실을 그때서야 문득 깨달은 것이다.
내 삶의 온전한 주인은 분명 나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혼을 하면서 배우자에게 내 삶의 책임을 자연스럽게 위탁했다. 마치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는 '지니의 램프'처럼 말이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것은 온전한 성인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고, 서로의 가치 있는 꿈을 응원하며 삶을 동반자처럼 나누는 관계가 아니던가. 그저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만을 원했던 나의 기대가 결혼 생활을 평탄하게 이끌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이상적인 결혼이란 무엇일까. 내 말을 무조건 다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이 아닌, 서로의 이야기를 귀 기울이며 삶의 희로애락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 요즘 TV나 생활 밀착형 예능 프로그램에서 부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설루션을 담은 방송들을 자주 보게 된다. 때로는 그 내용에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지난 모습을 되돌아보며 공감하기도 한다. 결국, '나' 자신이 온전히 괜찮을 때 비로소 배우자와 자녀와의 관계 또한 더욱 깊고 단단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바꾸려 애쓰는 대신, 내 삶을 배우자나 자녀에게 위탁하지 않고 먼저 '혼자서도 잘 해내는 사람'이 되어보는 것. 그것이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과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맺어가는 가장 확실하고도 아름다운 길임을 나는 오늘,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