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양육

by 최지우

불안과 양육: 파도 속에서도 함께 숨 쉬는 법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오늘 해야 할 일들이 아니라, 혹시 모를 변수들입니다. 그때 딸아이가 묻습니다. “비가 오면 어떡하지?” 짧은 한 문장이지만, 그 말은 집안의 공기를 조금 흔듭니다. 가족은 서로의 숨결을 가까이서 느끼며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말에도 의미를 얹고, 그 의미는 순식간에 걱정으로 부풀어 오릅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생각이 많고, 걱정이 많은 사람.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이 부정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멈춥니다. 고개를 좌우로 세 번 천천히 흔들어 몸의 긴장을 낮추고, 호흡을 길게 내쉽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묻습니다.


“이 일은 지금 일어났는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질문이 끝나면, 나는 당장 가능한 작은 행동 하나를 고릅니다. 체크리스트를 정리하거나, 물 한 잔을 마시거나, 창문을 닫습니다. 그런 사소한 행동이 마음의 방향을 바꿔놓곤 합니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 감정입니다. 우리의 뇌는 위험을 먼저 감지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부모가 된 순간 그 경보는 더 민감해집니다. 아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보이지 않는 위험까지 불러와 미리 대비하려 들지요. 문제는 그 경보음이 너무 자주, 너무 크게 울릴 때입니다.

부모의 불안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아이는 언어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표정, 목소리의 떨림, 숨의 길이, 몸의 각성까지 그대로 베껴 배웁니다. 그래서 부모의 불안은 단지 한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아이의 세계를 설명하는 배경음이 됩니다.


얼마 전의 여진을 기억합니다.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어른이 먼저 놀라 소리를 질렀고, 아이들은 그 반응을 보며 공포를 배웠습니다. 그날 이후 작은 소음에도 어깨가 들썩이고, 몸이 먼저 움츠러드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순간 선명해졌습니다. 부모는 아이의 세상이라는 사실. 세상은 언제나 아름답기만 하진 않지만,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감각을 아이가 체감하게 하는 것—그것이 부모의 태도이자 매일 연습해야 할 기술임을요.


그래서 나는 내 안의 불안을 없애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다루는 법을 배웁니다. 불안은 신호이지, 곧바로 재난을 뜻하는 경보가 아닙니다. 신호를 알아차리고, 몸을 가라앉히고, 현실을 점검하고, 가능한 행동을 고르는 루틴. 이 간단한 흐름이 나와 아이의 하루를 바꿉니다.


나는 하루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불안이 올라오면, 먼저 멈춥니다. 호흡을 4초 들이마시고 6초 내쉽니다. 다섯 번 반복하면 심장의 속도가 내려가고, 생각이 조금 정돈됩니다.

다음으로 묻습니다.

“지금/미래?” “내 통제 안/밖?” “지금 가능한 가장 작은 한 가지?” 이 세 가지를 가르는 것만으로도 생각의 덩어리들이 크기를 잃습니다. 마지막으로, 연결을 선택합니다. 물 한 잔, 창문 잠그기, 시계를 보고 다음 약속 확인하기 같은 작은 행동을 하고, 아이에게 한 문장을 건넵니다. “우리는 지금 안전해. 필요한 걸 차근차근해보자. 무서울 수 있어도, 나는 너와 함께 있어.” 이 한 문장이 파도를 낮춥니다.


물론, 파도는 다시 옵니다. 걱정은 다시 피어오릅니다. 그럴 때 나는 마음속에서 오래 아끼는 말을 떠올립니다.

티베트의 속담 중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걱정은 걱정으로 줄어들지 않습니다. 대신 시간과 호흡, 그리고 작은 행동이 걱정의 크기를 줄입니다. 때로는 시간에 흘려보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기다림은 수동이 아닙니다. 기다림은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기 위한 능동의 기술입니다.


아이 앞에서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완벽한 평정이 아닙니다. 우리도 사람이고, 놀라고, 두려워하고, 흔들립니다. 아이가 배우길 바라는 것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되는 법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숨을 고르고 순서를 정해 움직이는 사람’이 되는 법입니다. 그러니 아이 앞에서 불안을 숨기려 애쓰기보다, 불안을 다루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엄마도 지금 좀 놀랐어. 그래서 숨을 길게 쉬고, 우리가 할 일을 하나씩 해볼 거야.” 이 고백은 아이에게 두 가지를 가르칩니다. 감정을 인정하는 용기, 그리고 감정 속에서 움직이는 기술.


불안과 양육은 대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안은 양육을 더 깊게 만드는 문이 될 수 있습니다. 불안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무엇이 진짜 중요한가?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며 우리는 부모로서의 목소리와 태도를 다듬어갑니다. 통제 대신 신뢰로, 예측 대신 준비로, 단정 대신 관찰로 방향을 바꿔봅니다. 아이가 오늘 겪는 작은 비바람을, 내 불안으로 가로막지 않고 지나가게 해 줍니다. 필요하면 우산을 같이 들어주고, 물웅덩이를 함께 피해 걸어갑니다. 그러다 해가 나면, 우리는 함께 마른 길 위에 서 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약속합니다. 걱정을 키우는 해석 대신, 지금 가능한 행동 하나를 고르자.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의 얼굴을, 내 표정과 목소리로 먼저 연습하자.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는 연습을 계속하자. 아이들은 말한 대로가 아니라, 본 대로 자랍니다. 그러니 내가 먼저 불안을 다루는 사람으로 서 보겠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내일, 우리는 오늘보다 조금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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