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과학과 의술이 눈부시게 발달한 이 시대, 인간의 수명은 100세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심지어 2025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평균 수명이 140세에 이를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과거 오래 살아봐야 60세까지였던 시절, 그마저도 살 확률이 낮아 환갑잔치를 열어 삶을 축하했다는 역사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토록 길어진 삶 속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게 될까요?
죽고 못 살 것 같던 배우자도, 내 모든 것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자녀도, 금이야 옥이야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도 아니었습니다. 깨달음은 단순하지만 명료했습니다. 태어나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나랑 가장 오래 사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할 이 '나'에게, 나는 과연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주고 있을까요? 온전히 '나'로만 사는 순간은 과연 찾아올까요?
세상에 태어나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는 10대를 지나면, 20대에는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 나의 가정을 이루고, 자녀가 태어나면서 삶의 뿌리가 흔들리는 듯한 새로운 성장통을 겪게 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내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성장해 나갑니다. 신체적으로는 성장이 멈추더라도, 우리는 자녀를 키우면서 그들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성숙의 과정을 경험하게 되는 듯합니다.
나는 하루 24시간 중 얼마나 많은 시간을 '온전히 나'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내 몸이 보내는 감각, 내 머릿속의 생각, 내 마음의 감정, 그리고 매 순간의 경험들을 온전히 '알아차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봅니다. 내 몸인데도 때로는 내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을 무시하고 지나치다 결국 곪아 터져서야 병원을 찾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깨달음은 나를 돌아보고 보살피는 일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어떤 이들은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30%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분명 삶의 질이 다를 것입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쏟으며 좌절하기보다, 내가 이미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그 재능을 발휘하고 키워나가는 데 에너지를 쓴다면, 우리는 훨씬 더 행복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가장 오랜 시간 나를 위해 존재할 '나 자신'에게 이제부터라도 더욱 친절하고 따뜻하게 다가서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