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았다는 감정은 이상하다.
그때는 너무 아파서 피하고 싶고,
지나고 나면 괜히 다시 떠올리기 싫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상처를 덮어둔다.
잊은 척, 괜찮은 척, 아무 일 없는 척.
하지만 덮어둔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속으로 굳어져서
불신이 되고,
짜증이 되고,
결국 관계를 밀어내는 벽이 된다.
상처는 외면할수록 쌓이고,
직면할 때 비로소 풀린다.
⸻
사람들은 상처를 받으면
본능적으로 억울해진다.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해?”
“나는 잘했는데 저 사람이 문제야.”
억울함은 나를 보호해 주는 감정이지만,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르면
관계를 망가뜨린다.
억울함은 상대를 가해자로 만들고
나는 피해자로만 남기 때문이다.
그 상태에서는
아무도 성장하지 못한다.
⸻
어느 순간, 아주 조용히
다른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내가 놓친 건 없었을까?”
“그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한 건 아닐까?”
“내가 조금 더 말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이 질문 끝에서
우리는 종종 **‘미안함’**을 만난다.
미안함은
나를 작게 만드는 감정이 아니라
관계를 다시 살리는 힘이다.
내가 완벽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순간,
상대도 방어를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도 같다.
아이의 행동 앞에서
“왜 이렇게 말 안 들어?”라고 억울해질 때,
관계는 멀어진다.
하지만
“내가 아이의 마음을 놓쳤구나”라는 미안함이 들어오는 순간,
부모의 눈빛이 바뀌고
아이의 마음도 다시 열린다.
아이들은
옳은 부모보다
자기 마음을 보려는 부모에게
다시 다가온다.
⸻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그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억울함 속에 머무르며
관계를 끊어내며 살 것인지,
미안함을 끌어안고
다시 연결하며 살 것인지는
내가 정하는 일이다.
상처받은 마음은
피할수록 굳고,
마주할수록 풀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연습한다.
억울해지기보다
조금 더 미안해지는 쪽을.
그쪽이
나와 사람을 함께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