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것

by 최지우

얼마 전 남편과 간단히 반주를 하고 있었다.

양배추를 채 썰어 만든 전을 안주로 먹고 있는데, 작은딸이 말했다.


“감자전이다. 감자채 전 먹고 싶었는데…”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건 양배추인데, 한번 먹어볼래?”


아주 작은 조각을 집어 아이의 입가까지 가져갔지만

아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젓가락이 공중에서 잠시 멈췄다.

순간, 나는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잠시 후 아이가 내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엄마, 기분 나빠?”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맛있는 걸 같이 먹고 싶은 엄마 마음은 있어.

하지만 네가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한 걸 존중해.

먹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네 마음이니까.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


우리는 아이가 주체적인 삶을 살길 바란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의 모든 선택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조정하려 들 때가 많다.

마치 내가 살아온 인생이 정답인 것처럼.


그렇게 되면 아이는

점점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아이는 살아가며 실패도 하고, 좌절도 겪으며

자기만의 힘을 키워간다.

작은 성취를 통해 ‘나는 할 수 있다’는 감각을 배운다.


그런데 아이가 실패할까 봐 두려워

부모가 대신 결정해 주기 시작하면,

아이의 삶의 주도권은 서서히 사라진다.


부모가 대신 선택해 주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아이 마음속에는 이런 메시지가 쌓인다.

‘나는 나를 믿을 수 없어.’


그러다 보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스스로 묻기보다

부모의 기준에 맞춰 선택하는 아이가 된다.


부모의 결정대로만 살아야 한다면

그건 아이의 인생이 아니라

부모의 인생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릴 때 눈치 빠르고 착한 아이였다.

부모를 걱정시키지 않으려

알아서 잘하는 아이였다.


그런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크게 고집을 부린 일이 있다.


1남 3녀 중 둘째였던 나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취직해서 시집 잘 가면 된다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유독 대학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취직해 1년 동안 등록금을 모았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부모님께 말했다.

“저, 대학 가고 싶어요.”


나중에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원하니 말릴 수가 없더라.

나중에 안 보낸 걸 원망할까 봐 그게 더 무서웠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스스로 노력했고,

포기하지 않았던 나.


그것이

내가 내 인생을 선택하고 결정한

첫 번째 순간이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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